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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3 조회수360 추천수4 반대(0) 신고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루카 15:1-32)

오늘의 복음은 루카 복음 제15장으로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은전,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는 우리를 질책하시려고 하신 이야기들이 아니다. 우리 모두 길을 잃거나 돈을 잃거나 아들을 잃어버려보았기 때문에 오늘의 복음은 쉽게 공감하게 된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받아들이시고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투덜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잃어버린 양이나 잃어버린 은전이나 잃어버린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양을 찾고 은전을 찾고 아들을 찾고 기뻐하시는 이야기이다.
하느님께서 잃어버리신 것을 찾으시고는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세 이야기 모두 ‘기쁨’이 주제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같은 신성(神性)을 보여주신 것이며 이 세 이야기를 손수 지어내셨다. 이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맥뿐만 아니라 행간(行間)을 읽어야 한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증명하거나 주의할 점이나 도덕적인 격언을 첨언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항상 행간을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 근저에 숨어 있는 뜻을 헤아리도록 해야 한다. 깨달은 사람의 이야기 중에는 가볍게 넘겨버릴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또 이성(理性)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이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이성에 따라 걸어가고 있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착한 목자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말하고 있다. 첫 째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착하거나 길을 잃지 않아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길을 잃고 있을 때에도 우리를 찾아나서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기쁨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길 잃은 우리를 찾으시면 우리를 전혀 탓하시지 않고 무한히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철학의 근저(根底)에는 영화 스타트렉(Star Trek)의 외계인 스포크(Spock)와 같이 똑똑하지만 감정이 메마른 인간성이 있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 즉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향상시키고자 부단히 힘쓰고 시도하는 어떤 “하고자 함”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마다 자신의 내면에서 자기가 자신을 생장시키고 향상시키고 강화시키고자 하는 활동이다.
니체(Nietzsche)는 사람은 누구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행복을 느끼고 하느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혼자 위대해지는 초(Ubermensch, Superman)을 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이 말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외롭고, 강력하고, 이성적이고, 용감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무지(無知)하면 어쩔 수가 없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명(無明)이라고 했다. 빛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에고 때문에 자비심을 제외한 모든 신성(神性)을 잃어버렸다.
거룩함과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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