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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과 두번 태어나는 사람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4 조회수502 추천수4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 3:13-17)

니코네모는 위대한 스승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을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기 때문에 니코데모에게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설명하신 것이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로 실용주의철학을 확립했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1902년에 발간한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에서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once-born )’‘두번 태어나는 사람/다시 태어나는 사람(twice-born/born again)’의 두 형태의 그리스도인을 정의하고 있다.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은 ‘태어나고나서 전혀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사는 사람’을 말하고 ‘두번 태어나는 사람’은 ‘태어나서 죄를 짓고 살다가 참회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어 두번 다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제임스에 의하면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의 영혼(건강한 영혼)은 ‘푸른 하늘처럼 맑고, 어두운 고통보다도 꽃을 좋아하고 새를 좋아하고 순진한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결코 사람이나 하느님께서 병드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항상 만족하며 낭만적이다.’ 반면에 ‘두번 태어나는 사람’ 즉 ‘병든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옛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기쁨의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고통이 샘솟는 것처럼 느낀다.’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고 병들고 죄의식과 좌절감을 느낀 후에야 찾아온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들’은 ‘무척 눈이 먼 사람처럼 보이며 천박하게 보이지만’,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에게는 ‘두번 태어나는 사람들’이 ‘여자처럼 보이고 병들어 보인다.’ 그러나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은 삶에 적응함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고, 태어난 후 별 탈 없이 물 흐르듯 살아온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두번 태어나는 사람’은 그리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며 그들의 삶은 균형을 잡기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의 연속이다.
그리하여 ‘두번 태어나는 사람’은 어떤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제임스에 따르면, 이들은 이러한 기본 성격때문에 상반된 세계관을 보인다고 한다.
‘한번만 태어나는 사람’은 편안함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와 적법한 행동과 태도에서 자의식(自意識)을 얻게되지만 ‘두번 태어나는 사람’은 격리감에서 자의식을 얻게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좋아하는가? 아무도 비현실적이거나 병든 영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부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두사람의 형태는 표지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태어나서 한번도 죄를 짓지 않거나 한번 참회하고 나서 두번 다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어린 소녀에게 “만약 선한 사람들은 빨갛고 악한 사람들은 푸른 색이라면 너는 어떤 색깔이고 싶어?” 하고 묻자 소녀는 “빨갛고 푸른 줄무늬요.”하고 답했다. 아무도 한번만 태어나지 않으며 아무도 두번 째에 새로운 사람이 되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다. 또 태어나지 않았다면 다시 태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명칭 때문에 여전히 싸우고 있다. 끊임없이 ‘창조중심의 영성(creation-centred spirituality; 굳게 그리스도를 믿고 창조설을 믿는 영성)’과 ‘죄/구속의 영성(sin/redemption spirituality)’ 그리고 ‘원초적 축복(original blessing)’과 ‘원죄(original sin)’에 대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명칭을 통하여 선과 악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누구나 태어나고 나서는 많은 죄를 짓고 회개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고 난 뒤에 또 다시 죄를 짓는다. 참회란 회개하고 나서 두번 다시 죄를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참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십자가의 의미이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오늘을 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오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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