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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목마름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5 조회수364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5-27)
 
로마 시대의 십자가 형(刑)은 백성들을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루기 위한 제도였다.
누구나 로마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십자가 위에 죄명을 적어서 죄인이 지은 죄를 알렸다.
요한 복음 저자는 이 표지를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으로 이용하였다.
즉 예수님을 죽게했던 빌라도가 예수님이 왕이셨다는 것을 쓰게 했던 것이다.
그는 이 말이 가져올 파장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진실을 몰랐다.(요한 19:38) 그러나 결과적으로 카야파처럼 예수님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되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요한 11:49-52)
 
아무리 하느님을 부정하고 선(善)을 거부해도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인 것이다. 요한 복음의 십자가형에 대한 설명은 지나치게 짧지만 구경꾼들이 아니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에서는 로마 병사들과 예수님의 적들에 대하여 말했지만 이제는 마리아와 요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어머니’ ‘제자’라고만 말하고 있다. 어머니와 제자는 상징적으로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와 요한에게 서로 돌보라고 당부하셨다.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공동체가 있어야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기쁨도 없고 평화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14세기말 영국 최초의 여류작가이자 신비주의자인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은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신 주님의 말씀(요한 19:28)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목마름은 언젠가는 끝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심판 날에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그리스도의 영적인 목마름인 사랑이 계속되고, 우리가 구원되어 그리스도의 기쁨이 되는 천상 행복이 지금 여기에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이미 그 행복을 누리고 있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 심판날이 되어서야 그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를 당신께로 이끄시어 우리들이 무한한 기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목마름이고 바람입니다. 비록 지금 현재는 우리들 모두가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그 때에는 우리 모두 주님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고통과 수난을 겪으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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