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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0년 9월 20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7 조회수407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0년 9월 20일


루가 9, 23-26,  로마 8, 31-3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현세적 목숨을 안전하게 또 길게 간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위해 자기 목숨을 소모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발생한 말씀을 소중히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은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고 자기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자기 한 목숨 호사하며 오래 잘 살 길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북경에서 이승훈(李承熏)이 세례를 받고 귀국한 것이 1784년이고 그 이듬해인 1785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1882년 조선 조정이 미국과 수호 조약을 맺기까지 약 백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참수 혹은 옥사로 순교한 분들의 수가 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분들은 온갖 잔인한 형벌을 받고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 가족들도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들이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선교사가 파견되기 전에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중국으로부터 영입하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뿌리도 채 내리기 전에 박해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대 교리 교육은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연구하고 영입하였다는 사실과, 신앙에 대한 교육이 대단하지도 않았던 시기인데도, 많은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할 일입니다.


천주교 관계 한문(漢文) 서적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였습니다. 이승훈이 세례를 받기 약 150년 전의 일입니다.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한 한문으로 된 몇 권의 서적이 중국으로부터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서학(西學)이라 불렀습니다. 그 시대 이 문서들을 영입 연구한 사람들은 실학파(實學派)라 불리는 유교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교 국가를 표방하는 조선이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 있을 무렵, 합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학문과 사회 제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겪은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이 무렵 실학파가 연구한 천주교는 신앙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새로운 세계관이고 사회관이었습니다.


「홍길동」이라는 소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소설의 저자 허균(許筠)도 이 실학파의 일원이었습니다. 허균에 대한 연구서를 쓴 어떤 학자는 그 시대 조선 사회의 모습을 이런 내용으로 요약합니다(이이화, 「허균」 한길사 1997, 45-47). “첫째, 무고로 죄 없는 사람들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게 하는 일이 많아서 백성은 불안하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휩쓸었다. 둘째, 벼슬 팔아먹기와 뇌물과 횡령이 판쳤다. 셋째, 과거(科擧)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는 등 부정이 행해지고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 넷째, 무리한 토목공사들을 벌려 놓고 관리들은 공사 자재를 횡령하고, 민생고에 허덕이는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아서 매우 사치스럽게 살았다. 결국 임금으로부터 지방 수령에 이르기까지 자기 신분을 보호하기 바빴고, 그것을 위해서는 금력이 필요했다. 임금은 신하들로부터, 신하들은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는 길밖에 없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절망적인 그 시대의 모습입니다.


이런 여건에서 서학을 공부한 실학파 학자들에게나 후에 신앙을 영접한 초기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은 대단히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군주(君主)가 절대적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법은 왕이 자의로 만들어서 백성에게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느님이 질서 지어준 자연과 마음의 법, 곧 양심법을 가르쳤습니다. 노예와 같이 법을 지키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 이치를 따라 행동하고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0, 1 참조)을 열어주는 사상이었습니다.


조정(朝廷)이 만든 법은 그 시대 횡행하는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횡포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조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비롭고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그리스도 신앙은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선을 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무자비한 법과 제도에 한 마디 항의도 못하며, 짓눌려 살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질서, 곧 정의와 자비와 사랑의 질서에 대한 가르침은 그 시대 인간 삶이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한 순간에 걷어내는 기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조상제사에 대한 신앙인들의 거부는 박해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박해의 명분이었습니다. 조상제사는 그 시대 유교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신앙인들이 그것을 거부한 것은 유교 국가 체제의 근본 질서를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왕과 권력 구조의 절대성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신앙인들이 축첩(蓄妾)을 거부한 것은 유교가 가르친, 남녀 차별의 철칙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신앙인들은 사대부(士大夫)를 중심으로 한 계급의식을 거부하였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라는 의식은 계급적 차별을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순교자들 중에 백정 출신 황일광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나에게는 천당이 둘 있다. 하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고 또 하나는 양반과 쌍것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는 이 세상의 천당이다.” 백정 출신으로 멸시 당하던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계급의 장벽을 넘어, 신앙인 모두가 같은 형제자매로 통하는 신앙공동체는 그에게 또 하나의 천당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그들의 목숨을 버린 분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으로 열리는 새로운 질서를 열망하였습니다. 오늘 제2독서 바울로의 말씀 같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로마 8, 39)는 것을 믿고 형벌 당하고 죽어 가신 분들입니다. ◆

                           서 공 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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