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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바세계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21 조회수532 추천수7 반대(0) 신고

 

<사바세계>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하는데, 그 뜻은 참고

견뎌 가나는 세상이라고 한다.

참으로 의미있는 말이다.

사바세계에 대안 네이버 백과사전 안내:

산스크리트 Saha에서 유래한 것으로, 음역하여 사하(沙河)·색가(索訶)라 하고, 의역하여 감인토(堪忍土)·인토(忍土)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교화하는 경토(境土)를 말한다. 따라서 부처님이 섭화하는 경토인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의 번뇌를 겪어내야 하고, 오온(五蘊)으로 비롯되는 고통을 참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 국토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자연히 중생들 사이에서 참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부른다. 인내를 강요당하는 세간, 인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라는 말이다. 보살의 입장에서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수고를 참고 견디어 내야 하는 세계가 된다. 이렇게 일체가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인내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가 사바세계이다.

 

참아야 할 일이 참으로 많은 세상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더 자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야 하고,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치미는 울화를 참아야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이도 저도 다 잊어버리고 한번 쯤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

아서 답답한 심정을 참아내야 한다.

참으로 참아내야 할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한국 순교성인 대축일이다.

이 땅에 자생적인 교회가 탄생되었지만 이 종교를 제대로 알지 못한 유교문화에 맞

서다가

용감하게 피흘려 순교한 우리 성인들의 삶을 되돌아 보는 날이다.

그분들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사바세계’에서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인들의 순교는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참는 세상이라고 했듯이 이 사바세계에서의 참된 행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

에 있지 않다.

오히려 필요한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마음에 참된 행복이 있다. 만일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른다면

어느 세상에서도 참 행복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놀부는 그 많은 재산을 혼자 다 차지하고도 만족할 줄 몰랐다.

그래서 졸지에 벼락부자가 된 동생 흥부를 따라 멀쩡한 제비 다리를 분질렀다가 쫄

딱 망해버렸다.

 

이와 같이 참아야 할 것이 많은 이 세상에서의 참된 행복은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이 글을 일고 계신 분 중에도 마음에 불만이 가득해서 괴로와하는 분은 안 계

신지 모르겠다.

승진하지 못해서, 봉급이 깍이고 보너스가 중단되어서 울화가 치미는 분도 있을 것

이다.

그리고 고작 하나 있는 아들의 성적이 자꾸 떨어져서, 또는 타고 다니는 고물 차가

 자꾸 고장이 나서,

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는 하고 있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불만이 가득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아무리 불만해본들 그것으로 해결되기는커녕 더 마음만 불편

해지는 걸.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

을 것 같다.

그러면 분명 지금 보단 더 평안해질 것이다. 평안해지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사실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 까닭도 만족할 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더 가지려 하고, 더 큰 것, 더 좋은 것을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행복은 더 큰 것에 있지 않은 듯하다.

작고, 소박하고, 조촐한 것에 있는 듯하다.

 

두 번째로 이 사바세계에서의 참된 행복은 받는 것에 있지 않고, 주는 것에 있다.

서로가 아무에게도 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배고프고, 불행해지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도 이것이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기를 버린다고 해서 자기 존재를 없애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버린다는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내 놓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물론 그래야 한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갖게 되면 무거진다.

무거우면 짜증이 난다. 짜증나면 화가 난다. 화가 나면 싸우게 된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

필요이상의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근심이 더해지고 불안해지고 만다.

 

그리고, 우리가 내어 놓아야 할 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사실은 우리 마음을 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나눔이 이루어질 수 있다.

수억만금을 수재민 기금으로 내어 놓았다 하더라도 그 재물 속에 자신의 마음이 들

어있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돈이 수재민의 배를 채워줄 순 있겠지만, 마음을 채워주진 못할 것이다.

형식적인 겉치례로 자기 명성을 위해 내놓은 돈이라면 오히려 수재민들의 자존심만

상하게 만들 뿐일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내어 놓아야 할 것, 또 참으로 버려야 할 것, 그것은 재물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렇게 살아가신 분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한국 순교성인들이다.

그분들은 우선 천주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방해되는 모든 것들에서 마음을 버렸다.

단 한 번의 성사를 받기 위해 평생을 기다리기도 했고,

단 한 번의 미사참예를 위해 수 백리 험한 산길을 걸어야 했다.

그것도 남들의 눈을 피해 한 밤중에 걸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문과 죽음의 공포를 눈 앞에 직면하면서 그것들을 견뎌내야 했고,

혹시라도 고문을 받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배교할까 걱정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순교하기를 바랬던 분들이다.

 

그 때와 비교하면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은 너무나 편리해졌다.

언제든지 미사에 참여할 수 있고, 성사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이상에 가까운 신자들이 냉담중이거나 신앙생활에 미온적인

 삶을 살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 있는 곳에 재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마음이 가 있어야 할 곳, 그 곳은 이 곳이 아니라, 저 곳 피안이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영원한 ‘너’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여전히 가지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지금 조금이라도 가진 어떤 것에 대한 만족이다.

 

그 넉넉한 마음을 이웃에게 내어주고 나눌 때,

다시 말해, "사바"할 때

비로소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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