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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요한 움막 - 뿌스띠니아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22 조회수591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피정의 집이나 기도원을 찾아 들어가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피정의 집이나 기도원에 가야만 기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는 다락방이나 지하실에서도 가능하고 커튼을 드리운 방의 한 쪽 구석에서도 가능하다. 어디든 잠깐 명상에 잠길 만한 곳이면 된다.
러시아 정교회 전통에는 영적 영웅들이 죽어 다시 태어나는 곳,
즉 가장 낮은 곳을 ‘고요한 움막- 뿌스띠니아(poustinia)’라고 불렀다.
이 말의 의미는 ‘사막’이다. 불교에서는 세속의 잡사(雜事)에서 벗어나 일체의 방해를 받지않고 용맹정진 할 수 있는 수행처를 ‘토굴’이라고 한다.
 
뿌스띠니아는 야전침대와 작은 책상과 의자만 제공되는 작은 통나무 집 또는 오두막으로 오로지 성경만 읽어야 하고 제공되는 음식은 오로지 빵이며 차나 커피를 마시기 위한 따뜻한 물만 제공된다. 뿌스띠니아에 머무는 뿌스띠니끼(pousitnikki)는 홀로 침묵속에 지내면서 일하지 않아야 하고 심지어는 성령이 이끌지 않으면 기도도 해서는 안 된다. 주말에 방문객들이 머물게 되면 숲속이나 오두막에 딸려 있는 정원을 거니는 것은 허락된다. 이렇게 하여 뿌스띠니끼는 자신을 지적활동을활발하게있는 사막으로 데려감으로써 고독, 희생, 수양(修養) 등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다.
뿌스띠니아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이며,‘육(肉)의 옷을 벗는 것’을 뜻한다. 영혼 깊은 곳으로 뛰어들어가 우리를 기다리시는 성령이 계신 저 아래 밑바닥에 놓고, 늘 우리가 지녔던 나 중심의 존재가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벽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면의 사막에 들어가게 되면, 처음으로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다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옛 생활양식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위적이었고,
우리의 옛 가치들이 보잘 것 없고, 우리의 옛 자아가 이중적이었음을 알고 숨이 막히게 된다. 그 과정은 우리가 자신을 정의했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에 몹시 괴롭다.
그러나 뿌스띠니아에 들어감으로써 프란치스코 성인이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놀라운 빛’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한다. 껍질이 말라 죽어야만 새 생명이 나온다.
벗어버리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곳인 ‘고요한 움막’은 사람마다 다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경우에는 산 다미아노의 구덩이였고,
부처님에게는 우림이었고 무함마드의 경우에는 사막이었고,
예수님에게는 유대지방의 광야였다.
 
많은 수도회에서 하듯 헌신과 포기의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든 크리스천은 어디에 있든지, 서약을 하든 하지 않든 누구든지, 더 많이 헌신하고 포기해야 한다. ‘더 많이’ 헌신하고 포기하는 것이 사막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며 고독한 곳, 즉 ‘고요한 움막’이 될 수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죄와 형제들의 죄에 대한 속죄와 간구와 보속을 하면서 하느님께 기도와 회개의 양팔을 들어올릴 수 있다.
하느님은 진실하시며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진리의 말씀을 말할 용기를 모으기 위해 ‘고요한 움막’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천사가 예언자의 입술에 댄 타오르는 숯불처럼, ‘고요한 움막’은 우리를 씻어주고
그렇게 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캐서린 드 휴엑 도허티(Catherine de Hueck Doherty, 1896-1985)의 『고요한 움막 : 서양인을 위한 동양의 크리스천 영성(Poustinia: Christian Spirituality of the East for Western Man)』중에서 발췌 편집)
 
 캐서린 드 휴엑 도허티는 1896년 러시아에서 출생하였으며, 1921년 캐나다에 정착하였다. 1930년대 초에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사회정의를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평신도 공동체인 <친교의 집(Friendship House)>을 설립하였다. 1947년 새로운 형태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마돈나 하우스(Madonna House)>를 설립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며 봉사하는분원(Mission houses)있는가하면 그녀가 말했듯이 ‘지금 이 시대에는 외로움도 가난’이기에 그들을 찾아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하는 소명을 사는 분원도 있다. 그녀는 교회를 위한 위대한 영적인 유산들을 남기고 1985년 12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캐서린 도허티의 영성의 핵심은 그녀가 ‘작은 소명(The Little Mandate)’이라고 불렀던 복음 말씀의 ‘증류(distillation)’로 요약할 수 있으며 그녀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로부터 들었다고 생각하고 이 말씀대로 살았다.
일어나서 가라!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직접 주어라. 나의 십자가(가난한 사람들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가난한 사람에게 가고, 가난하게 되고, 그들과 하나가 되고, 나와 하나가 되어라. 작아져라. 항상 작아져야 한다!
단순하고 가난하고 어린이처럼 되어라. 자기 합리화를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복음을 전해라.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너를 인도해주실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지극히 사소한 일이라도 열심히 하여라. 절대로 대가를 바라지 말고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장터로 가서 나와 함께 머물러라. 기도하고 금식하라. 항상 기도하고 금식하라.
공로를 내세우지 말아라. 이웃의 발에 빛이 되어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들의 마음 깊이 들어가라.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항상 기도하라. 그러면 나는 너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마돈나 하우스>와 같은 곳을 만들어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돌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심 재기 교수와 이 인복 교수인데 이 인복 교수가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는 캐서린 도허티를 생각나게 한다.
<치유와 기적의 식탁>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청와대에 가서 식사하면, 그것은 신문에 보도될 일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 함께 식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살붙이요 피붙이가 되는 기적의 전례입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꽃동네 사회복지대학교에 학생으로 다니던 때였습니다.
기숙사 새벽 미사에서 나는 사제가 드시는 큰 성체의 일부를 받아 모신 일이 있습니다. 60세가 넘은 늙은 학생을 격려하시는 사제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대전교구의 시골 성당에서 성령세미나 8주 코스를 인도하던, 십수 년 전 일입니다. 그 여덟 번 봉사의 여덟 번 미사에서 사제는 역시 쪼개 드시고 남기신 성체를 주셨습니다.
“고생한다, 애쓴다” 격려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언어를 읽었습니다.
최근에는 마산교구의 연수원에서 이틀 간 회의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 미사에서 사제는 조각내어 드시고 남기신 성체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미사 후에 신부님께서 “젊은 새댁이던 때를 기억하는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교회 안에서 봉사하셨군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격려해 주시는 성직자의 눈 속에서 마주 앉아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세례받은 지 30년 후, 로버트 드그란디스 신부님의『미사를 통한 치유』를 번역하고 나서야 미사를 치유의 전례로 알게 되었습니다. 대구교구 은혜의 밤에서 말씀 봉사를 마친 후 파견 미사에서였습니다. 거양된 성체를 우러르며 강렬한 주님 현존감 때문에 “예수다!” 하며 땅에 엎드렸습니다. 사제가 성체 분배를 마치시고 내 앞으로 오시어 “마리아! 고개 드세요” 하셨습니다. “이 죄인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30년을 “성체는 예수래!”하며 겁 없이 모셨는데 “예수님이시다!”하고 고백하자,
송구하여 성체를 모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제가 다시 “순명하세요!”하시어,
나는 “예수님! 순명하기 위하여 고개를 드오니,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했습니다.
그 때 분명히 가슴에서 피어올라 세포 알알이 퍼져 나가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리아야! 네가 더러우니 나를 먹고 너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지, 네가 정결하다면 나를 먹을 필요가 없다. 나는 죄인을 위하여 세상에 왔노라.”
그 날, 나는 전 생애적이고 총체적인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미사는 치유의 공간이요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성체를 모신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한 피붙이요 살붙이가 되는 기적의 식탁입니다.
(2004. 6. 13자 서울주보, 이인복 마리아, 나자렛 성가족원 원장)
 
이인복 마리아 자매님은 캐나다의 <마돈나 하우스>에서 수련을 받은 후 경기도 포천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모조차 손을 든 부랑 가출 청소년들이나 미혼모들과 이들 부부와 뜻을 같이해 설립기금에 기여하는 퇴직교수나 봉사자들이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노후를 보내며 교육과 봉사에 참여하는 생활 공동체 <성가의숙 마리아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심재기 이인복 교수 부부는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사람의 인생에서 ‘장수(長壽)’란 물리적 신체가 몇 년을 사느냐는 문제가 아니다”며 “내가 세상에 남기고 가는 아름다운 추억,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의 나이를 합한 것이 내 나이”라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진정한 나눔의 기쁨과 그 의미를 체득한 분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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