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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24 조회수979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9월 24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Who do you say that I am?
(Lk.9.20) 
 
제1독서 코헬렛 3,1-11
복음 루카 9,18-22
 
어떤 음식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 음식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그 음식 자체가 동이 나서 찾기 힘들 정도가 되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음식이 정말로 몸에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좋지 않은 음식까지도 소문에 의해서 명약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은 다른 이의 말에 쉽게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음식 외에도 많은 경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나요.

어느 미개한 나라에서 왕과 왕비가 엉터리 관상가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관상이 너무나 나쁘기 때문에 얼굴을 성형수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는 일이 잘 풀리고 남의 입방아에 덜 오를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 소리를 듣고 왕과 왕비는 무모한 수술을 감행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답니다. 왕과 왕비가 성형수술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라 안 백성들은 너도나도 앞 다투어 성형외과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쩡한 얼굴을 째고 꿰매느라 비싼 돈을 들였습니다.

과연 얼굴에 따라서 나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얼굴은 인생의 이력서라고 말하지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덕스럽게 살면 덕스러운 얼굴이 되고, 선한 행동을 하면서 살면 축적되어 아름다움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면서 위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나의 판단과 생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질문하시지요.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 쓰라고 하신 질문이 아니었음을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재차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즉,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흔들려서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중 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스스로의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통해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신비를 가르쳐 주심을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혹시 나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만을 참조해서 너무나도 크신 분을 아주 작은 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또한 그럼으로 인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하늘나라의 놀라운 신비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주님을 향해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를 청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우리가 더욱 더 주님을 잘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하늘나라의 신비는 나에게 더욱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참, 공지 한 가지 올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내일까지 1박 2일 동안 성소후원회 임원 연수를 다녀옵니다. 따라서 새벽묵상글과 방송을 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착오 없으셨으면 합니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이 보인다(정진규).





나의 아버지, 나의 스승(박민서 신부, ‘좋은생각’ 중에서)

어릴 때부터 청각 장애인 부모님께 소리 없는 언어, 수화를 배우며 자란 정순오 신부님. 청각 장애인의 애환과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분으로 오랜 시간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무엇보다 청각 장애인이 고백 성사나 미사를 직접 드릴 수 있도록 한국에도 그들을 위한 신부가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고는 두 살 때 청력을 잃은 나를 사제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청각 장애인이 신부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10년 만에 겨우 공부를 마치고, 다시 혼신의 힘을 들여 2년여에 걸쳐 작성한 논문 심사를 앞둔 날이었습니다. 유학 생활의 마지막 관문인 석사 학위 논문 심사였죠. 가슴을 졸이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결과는 불합격!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쓰라린 아픔을 겪었습니다. 내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기에,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좌절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다 가톨릭 신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어 가정을 꾸릴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고민 끝에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신부님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섭섭해 하거나 화내시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뜻밖의 답신이 왔습니다. “네가 네 삶을 주관하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네 삶을 결정해 주거나 강요할 수 없다. 가톨릭 신부가 되든, 결혼을 하든 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청각 장애인이 오래전부터 네가 신부가 되길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신부님의 답신은 내게 힘찬 용기를 주었습니다. 한순간,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서툰 결정을 한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각오로 논문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반년 만에 논문 심사를 통과하고, 유학 생활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내겐 자상한 아버지이자 인생의 스승이신 정순오 신부님. 그의 격려와 충고가 없었다면 아마 가톨릭 신부로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겁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희망을 전하는 사제의 길을 가도록, 그는 밝게 빛을 비춰 주는 등대 같은 분입니다.


 
 
 
 Drea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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