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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죽음 묵상
작성자최종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25 조회수539 추천수6 반대(0) 신고

* 오늘 2010년 9월 17일, 장 가브리엘을 만났다.

전에 우리본당에서 연령회 봉사를 무척 많이 하시던 분이시다.

10년 전 진천으로 이사한 후 얼마 안 되어 위 수술 장 수술 다하고

아직도 수술 후유증들을 달고 다니면서도 연령회 봉사를 계속하신단다.

게다가 오랫동안 병원 생활하던 아내가 2년 전부터 암환자로 판정 받아

이제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하느님의 부르심 만을 기다리고 계시단다.

 

그가 오늘은 몹시 침통한 표정으로 성당 뒤편에 앉아있다.

미사 전 잠시 그를 뵙고 상황 설명을 들었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누구보다도 희생봉사를 많이 한 그다.

 

나는 그분과 같이

선업을 많이 쌓아온 이들의 마지막이 순탄치 못함을 여러 번 보아왔다.

인과응보의 세상적 판단으로 볼라치면

그러한 분들의 말년은 죽음만이라도

남다르게 평화로이 맞았으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기대와는 다르게

적어도 외형적인 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를 못하였다.

물론 신심 깊은 이들이기에 그분들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어

오히려 그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기쁨을 찾고,

그 고통을 예수님 수난의 고통에 비겨

즐길 줄도 아는 성덕을 갖추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대개 그러한 분들의 입에서는 감사하다는 말씀이 항상 떠나지 않음을 본다.

 

나의 죽음을 상상해 본다.

 

아내 앞에서 죽을 때;

(내 욕심이지만,) 내가 제일 아름답게 선종할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된다.

침해만 없다면, 암 병이라도 앓다가 죽어도 좋겠다.

어떠한 암이라도 좋겠다. 풍이라도 좋겠다.

정신 줄 만 안 놓고 아내 앞에서 죽는 그 순간까지

똘방똘방한 정신 상태로 죽는다면

가장 멋지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식들에게 유언도 폼 나게 할 것 같고.

신부님 모시고 고백, 성체, 병자성사로 임종 준비 다 할 것이다.

가족 친지 둘러서서 눈물 흘려 바라보며

그들의 임종기도와 성가소리 들으며 숨을 거두는 아름다운 정경을 생각해 본다.

 

자식들 본당마다 교우들 다 모여와서 연도소리 끊이질 않을 것이고.

여러분 신부님들 연미사 장례미사 잇대어 드려 주실 것이리라,

문상 온 손님들 아쉽다 말 할 것이고 아내와 자식들 슬프다고 울어도 줄 것이리라.

 

다만, 먼저 떠나는 나는 평생을 나를 위해 살아준 아내한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갈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나에게는 새로 지은 따뜻한 밥을 먹여주고

자신은 언제나처럼

묵은 밥과 아이들이 지저분하게 먹다 남긴 밥 아깝다 쓸어 먹든 아내다.

 

선물 한번 안 해줬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항상 괜찮다 말하던 아내다.

집안 살림에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자식들에겐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르치던 아내다.

쓸고 닥고 고치고 내적 외적 모든 일 도맡아 하여온 그다.

 

행동 없고 마음뿐인 남편의 사랑만을 믿고,

진리와 지혜를 얻기 위한 남편의 노력이라면

바로 자신의 기쁨이며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아내다.

어쩌다가 힘들고 피곤한 그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할라치면

그는 언제나처럼 괜찮다고만 말하는 아내였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난다면;

평생을 나를 위해 헌신한 아내이고 보면

마땅히 내가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은총 속에 하느님 품에 안겨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비통절통 함에 젖어 슬퍼만 할 것 같은 상황이 눈앞에 전개 된다.

 

자식들이 다 알아서 거룩하고 장엄하게 장례할 것이다.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내 남은 인생을 더 걱정하며 궁상스레 넋두리나 할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이미 남이 보기에도 그렇고, 내가 생각할 때에도

영락없는 바지저고리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아내가 죽는 그날부터 나의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라

자식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될 것 같다.

자식들은 거침없이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할 것이고,

알만한 성직자분들께는 누구에게나 장례미사며 연미사를 부탁해 둘 것이다.

적어도 일 년 동안은 그렇게 할 것이다.

 

장례수습 이후,

나는 자식들의 짐이 되는 천덕꾸러기임이 분명하리라.

어느 자식인들 늙고 병들고 냄새나고 쓰잘 데 없는

이 늙은 몸을 기꺼이 맞아 거둘 것인가!

 

그것도 정신 줄이나 안 놓으면 다행이련만, 침해나 중풍이라도 곁들인다면

그 누가 나를 반갑다 하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금의 내 생각대로라면, 나는 가리라. 요양원으로,

지금도 나를 어서 오라 손짓하시는 방 신부님께로 가리라.

방 신부님이 아니어도 좋다. 그분의 후임 신부님께라도 좋다.

그러면 나는 그곳에서 외로움은 있을 지라도

하느님의 크신 은총 안에 편안한 죽음은 맞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그 또한 내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아내와 내가 모두 다 남의 도움 없이는 거동이 불가할 때;

역시 시설로 가야할 것이다. 천주교회가 운영하는 시설 어느 곳이든,

그렇게 하고픈 마음은 간절하나 이미 내 뜻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자식들의 생각과 주장이 우선하리라.

그것은 나의 소망일 뿐,

 

다행한 것은

자식들이 하느님 신앙을 잃지 않고 성사생활 잘하고 있으니 천만 다행한 일이다.

혹여, 앞으로의 일을 장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죽는 날까지 성사 생활 잘하고 은총 속에 살도록 보살피지는 아니 하겠는가!

오히려 우리 내외가 망령되이 정신 줄을 놓을까가 더 걱정 될 뿐이다.

 

최악의 경우는

아무런 죽음 준비 없이 우리 내외 함께 급사 내지는 객사할 경우이리라.

어떠한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경우를 특히 대비하여

더욱 그리고 항상 성사생활로 은총지위에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근력이 남아 있는 동안은 성덕도 많이 쌓고 기도도 많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밖의 생각지도 못한 극한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최악의 경우가 생겨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모든 것들은 죽음을 단순 논리로 바라 볼 때의 평가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죽음의 공포는 한순간의 위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여 본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몇 해가 될지도 모르는 오랜 시간을

병상생활에서 겪을,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찌르는 듯한 아픔,

쑤시는 고통, 욱신거리는 몸통, 외롭고 허전한 우울증,

영혼을 분노케 하며, 한도 끝도 없이 밀려오는 공포와 번민

그리고 온갖 잡다한 생각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에 합치될 수 있느냐가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 고통들이 오히려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

죽음을 통하여 영광의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을까가 난제일 것이다.

 

그러한 덕행은 한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부터

갈고 닦는 훈련을 거쳐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분노에 더디신 하느님 같이, 분노를 삭일 줄 아는 신앙생활,

악당의 침 뱉음을 당하신 예수님처럼 모욕을 참아낼 줄 아는 신앙생활,

모진 편태에 굴하지 않으신 예수님처럼

질병에서 오는 아픔을 이겨낼 줄 아는 신앙생활,

산원에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의 공포를 기도로서 이겨 내시고

온전히 성부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신 예수님처럼

죽음 뒤에 있을 영원한 행복을 믿고 바라리라.

 

영광의 하느님을 기리며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과 신심생활과 학습 그리고

오랜 경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확신으로

몸과 정신에 박히고 길들여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주님, 이러한 충실한 믿음의 생활이 성실하게 실천되어 질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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