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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유별난 사람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27 조회수478 추천수5 반대(0) 신고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루카 9:51-56)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네르게스(boanerges)’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히브리어로는 ‘천둥의 아들들(sons of thunder)’이라는 뜻이며 ‘열정적인 사람 또는 성질이 급한 사람(hot heads), 힘찬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설교자’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사건에서 처음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단어를 쓰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진정시키고 나무라신 것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는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고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마태오 11:29)
사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앙숙이었고 서로 이방인 취급을 했다.
 
사람은 보통 하루의 95%는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산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거부하거나 나쁘게 대하면 금새 마음이 온유하게 되지 않고 겸손하지 못할 때가 많다.
누구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자신의 이기심을 잣대로 남을 평가한다. 자기 자신이 ‘유별난’ 줄을 모르는 것이다. ‘유별나다’는 것은 ‘보통의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상(正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계명은 ‘사랑’이었다.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두 제자는 별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불같은 성질을 부렸다.
미국의 작가이자 강론가로『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원칙(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을 쓴 데일 카네기(Dale Breckenridge Carnegie, 1888-1955)가 말했다.
“적(敵)을 미워하면 그 적에게 우리를 꺽을 힘을 주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리하여 잠을 못 이루게 되며 식욕을 잃게 되며 혈압이 높아지게 되며 건강과 행복을 잃게 됩니다. 그들이 우리들이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그들이 우리들과 같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기뻐서 춤을 출 것입니다.
우리들의 증오는 그들에게 전혀 상처를 주지 않지만 오히려 밤낮으로 우리 자신을 지옥에 있게 만듭니다.”
 
미움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은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들이 원수가 되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했다. ‘나’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하게 되면 ‘웃는 낯에 침을 뱉는 사람이 없었다.’
성령을 받아 항상 기쁘게 느끼고 평화를 느끼고 있으면 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게 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오 7:12)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게 마련이다. 기쁨을 주면 기쁨이 돌아오고 슬픔을 안겨주면 슬퍼하게 된다. 미워하면 자기 자신만 병들게 된다.
 
카네기가 말했다.
“아무리 바보라도 자기 잘못을 변명할 줄 압니다. 실상 모든 바보가 그렇게 변명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값어치를 끌어올리게 되어 스스로도 뭔가 고결한 느낌으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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