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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28 조회수1,134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On the way they entered a Samaritan village
to prepare for his reception there,
but they would not welcome him
because the destination of his journey was Jerusalem.
(Lk.9,52-53) 
 
 
제1독서 욥 3,1-3.11-17.20-23
복음 루카 9,51-56
 
얼마 전, 이번에 신학교를 지원하기로 했던 예비신학생이 올해에는 다른 대학을 가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곧바로 신학교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맘껏 하다가 나중에 신학교에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인심 쓰듯이, 꼭 언젠가는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아까운 지 그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신부님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하지만 이 세상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보다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음에 가장 행복한 길이라는 것은 왜 모를까요?

요즘 유행하는 텔레비전의 광고가 있습니다. 그 광고에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산수유 참 좋은데, 남자들에게 참 좋은데, 방송이라 말할 수도 없고.”

효능에 대해서 전혀 말하고 있지 않은 광고이지만 궁금증을 자아내고 관심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저 역시 이 광고처럼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신부 생활 참 좋은데, 남자들에게 참 좋은데, 방송이라 말할 수도 없고....”

진짜로 좋거든요. 진짜로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를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자기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로만 듣는 경우가 너무나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가겠다고 했던 젊은이들도 쉽게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하고, 또한 주변에서도 신부 되는 것이 힘드니까 포기하라고 권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2,000년 전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예수님이 참 좋고, 특히 각자에게 있어서 정말로 좋은 분인데도 불구하고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을 예수님한테 얻으려고만 할 뿐, 함께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사람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을 맞이하시지 않습니다. 남 유다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을 보통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진정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과연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만이 참된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예수님을 적대시하면서 멀리 할 수 있었을까요? 즉시 달려와서 맞이해도 부족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냉랭한 반응으로 주님을 배척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 이신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면서 주님을 멀리하고 때로는 배척합니다.

‘예수님 참 좋은 데,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데, 뭐라 말 할 수도 없고....’

저의 심정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멀리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야 참 좋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의견이 같은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의견이 다른 이들 덕분에 성장한다(프랭크 A 클라크).




아버지의 한 마디(김경집, ‘완보완심’ 중에서)

얼마 전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문상하러 갔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초췌해진 모습이 안쓰러워 다독이는데 친구가 말하더군요.

“아버지는 무능하셨지. 형들은 아버지를 비난하기도 했어. 나도 그런 아버지가 싫었지만 그분의 한마디가 날 수렁에서 건진 건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어릴 적, 부엌에서 음식 준비하던 어머니가 친구에게 김치를 꺼내 오라고 시켰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만 독 뚜껑을 놓쳐서 박살났답니다. “쨍그랑!” 소리에 놀란 어머니는 부엌에서 뛰어나와 빗자루로 아들을 때리셨답니다. 그 뒤로 어머니는 그를 장독대 근체 얼씬도 못하게 했지요.

그런데 며칠 뒤 아버지가 독 뚜껑을 사 오며 그러시더랍니다. “상태야, 김치 좀 꺼내서 엄마에게 갖다 드려라.” “또 깨뜨리면 어떻게 해요? 그렇잖아도 엄마가 미워하는데.” 그러자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엄마가 널 미워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살림에 쫓겨서 그런 거야. 또 깨뜨리면 어때. 아버지가 그거 하나 살 돈은 있다. 사람이 독 뚜껑 하나 두려워해서야 되겠니?”

더 이상 가타부타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아들 마음에 박힌 상처와 두려움은 그날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랍니다. 그게 어린 아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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