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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29 조회수998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Amen, amen, I say to you, you will see heaven opened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Jn.1.51)
 
 
 
제1독서 다니엘 7,9-10.13-14
복음 요한 1,47-51
 
며칠 전,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보낸 날이었지요. 오전에는 강화에 있는 인천신학교 부제반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 있었고, 오후에는 사무실에 돌아와서 업무를 봤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동창 모임이 있어서 늦은 시간까지 함께 했었습니다. 피곤함을 느끼면서 방에 들어오는데 저는 하마터면 고함을 지를 뻔 했습니다. 글쎄 제 바지의 가랑이 부분이 완전히 터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언제 터졌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하기 전? 아니면 강의 때? 아니면 낮에 사무실에서? 아니면 동창들과 식사를 하면서?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방에 들어오기 전에 바짓가랑이가 엄청나게 크게 터져 있었다는 것이지요.

부끄러웠습니다. 너무나도 크게 터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다 보았을 텐데 이런 망신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바지가 터져 있는 것도 모르고 지냈던 저의 무감각함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감각이 죄에 대해서는 더욱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지 터진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 왜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그런 죄를 지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거짓 없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나타나엘을 향해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지요. 바로 죄를 짓지 않는 올바른 생활을 통해 천사의 모습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주님께서 인정하는 올바른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를 반성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우리가 올바른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이 아닌 나중으로 미루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뒤로 미루면서 각종 핑계를 앞세우기에 바빴습니다.

많은 부자들은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온전하게 자식에게 물려줄까?”

이러한 고민을 들은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유산이란 죽었을 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멋진 삶으로 살았을 때 물려주는 것이다.”

내가 죽은 다음으로 미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향해 올바르게 살아가는 믿음이라는 유산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지금 당장 물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역시 예수님께 칭찬을 받아 천사가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영광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헤르만 헤세).



 

모두가 스승이다(노회찬, ‘행복한 동행’ 중에서)

1992년. 2년 6개월 만에 만기 출소한 나에게 바깥세상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어두운 밤, 길 잃은 배처럼 아무리 찾아도 등댓불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에게 푸념처럼 말했다. 믿고 따를 만한 스승이 없다고, 온화한 성품의 선배는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그러나 누굴 스승으로 믿고 따라야 하는지 말하진 않았다.

사실 그때 나는 영웅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무언가 막힌 길을 뚫어 낼 만사형통의 완벽한 지도자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어느새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거나 배움이 짧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서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정치가 가야 할 길을 배우고 시장 좌판 할머니의 갈라진 손에서 경제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배우곤 한다.

그렇다.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내가 갖지 못한 것, 배워야 할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그것을 발견해 내고 배우려 하기보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스승’을 안이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이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모든 존재의 걸음걸이, 앉는 모양새까지 삶의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세계 최초로 8000미터급 정상을 16군데나 오른 것으로 유명한 등산가 엄홍길 대장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물었다.

“세계 최고봉을 다 올랐는데 아직 올라야 할 산이 남아 있는가요?”

엄 대장은 이렇게 답했다.

“낮은 산 역시 그 나름대로 오르는 묘미가 있죠. 산이 낮다고 해서 오르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높든 낮든 산은 산이고 거기서 배울 것이 있다는 말로 이해했다.

좋은 환경, 좋은 사람에게서만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제자는 스승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서든 소중한 진리와 삶의 이치를 터득해 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제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제자가 많은 스승보다 스승이 많은 제자가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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