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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소화(小花)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01 조회수994 추천수16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 소화(小花)


 

저는 가끔 신자 분들께 예수님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신자 분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다고 대답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보셨습니까?

왜 우리들은 매일 성체를 보면서도 그것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까요? 작은 빵조각에 불과하지만 성체는 분명히 예수님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보았다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 생각에는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습니다. 차도 큰 차가 더 좋고 집도 큰 집이 좋고 나라도 커야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으니 손바닥보다도 작은 밀떡 조각에 온 우주보다도 큰 하느님이 들어가 계신다는 것을 좀처럼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톨릭 영성은 커지는 영성이 아니라 작아짐의 영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작아지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서 큰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빵조각 안에 들어오실 만큼 작아지실 줄 아시기 때문에 가장 크신 분인 것입니다. 작아지는 것이 힘이고 사랑입니다. 커지는 것은 이와 반대로 동물적 본성에 불과합니다.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크게 보이려고 하거나 내세우려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화 데레사 축일입니다. 소화란 ‘작은 꽃’이란 뜻입니다. 왜 별명이 작은 꽃이 되었느냐면 이 성녀가 작은 희생의 꽃다발을 많이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열네 살에 갈멜 수도원에 들어와 십년 동안 살면서 사실 겉보기에는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교의 수호성인이라지만 또 다른 전교의 수호성인이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그 분은 세계를 돌아다니시며 수만 명에게 세례를 주셨지만 소화 데레사는 단 한명에게도 세례를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교의 수호성인이 되셨을까요?

그녀는 수도원에서 바칠 수 있는 작은 희생들을 전교를 위해 봉헌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나 미사 할 때 등을 의자에 붙이지 않고 앉는 희생을 바치는가 하면 기침을 많이 하는 수녀님 옆에 앉아 그것을 잘 참았고 빨래할 때 자신에게 물이 튀어도 그저 희생으로 맞고 있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아프단 소리를 안 하고 참고 그것을 전교를 위해 바쳤습니다.

실제로 다른 성인들이 이루어놓으신 업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봉헌, 작은 꽃들이었지만 어떤 누구도 이 작은 봉헌으로 회개시킨 이들의 숫자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세례를 준 숫자보다 적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성인이란 큰 업적을 이루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것을 크게 볼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밀떡을 그리스도로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작은 희생도 하느님께서 결코 작게 보시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다시 말하면 성당을 몇 개 짓는 것보다 한 끼 식사를 거르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하느님 눈에는 더 크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 사람을 선교하는 것보다 선교를 위해 정성껏 묵주기도 한 단 바치는 것이 하느님 눈엔 더 크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하루에도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작은 보석 같은 희생거리들이 즐비하게 널렸습니다.

 

순교복자수도회의 가장 핵심적인 영성은 ‘麵形無我(면형무아)’입니다. ‘면형’이란 밀가루 모양, 즉 성체를 의미합니다. 성체가 되기 위해서는 밀 알갱이들이 잘게 부서져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버리는 ‘무아’입니다. 자신을 비워야만 밀떡과 같이 작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 손 위에 올라오는 성체, 사실 성당 안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온 세상도 담을 수 없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비우고 당신의 창조물인 인간의 손바닥 위에 올라올 만큼 작아지셨습니다.

 

저는 어린 아기의 놀라운 힘을 보았습니다. 세상 근심 걱정에 쌓여있던 어른들도 아기가 웃는 것을 보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어디에서 사람을 그렇게 행복하게 하는 힘이 나올까요?

소화 데레사는 하느님께 그런 존재였습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그저 웃음만으로 하느님을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신랑이 일 잘 하는 식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순결하고 겸손한 신부를 원하듯이 하느님도 그저 어린이같이 깨끗한 우리 영혼을 원하는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이런 면에서 눈에 보이는 성취를 지향하는 우리 성향에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하는 분인 것입니다.

 

 

< 사랑한다는 말은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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