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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기도" - 10.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06 조회수357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0.6 수요일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약1035-1101) 기념일

갈라2,1-2.7-14 루카10,38-42

 

 

 

 

 

"주님의 기도"

 

 

 

어제 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의사와 대화 도중

제가 듣는 귀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자

의사선생님의 즉각적인 답변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요.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세상을 향해 난 창인데요.”

 

만일 성전에 창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지요.

어둡고 답답해 못 견딜 것입니다.

이 창문을 통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고

밝은 빛과 신선한 공기가 끊임없이 공급되기에

쾌적한 분위기에서 공동전례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라면

그대로 눈과 귀는 몸이라는 성전의 창과 같습니다.

만일 눈이 볼 수 없고 귀가 들을 수 없어

외부와 불통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그러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행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주 자명한 진리이지만 평소 눈과 귀의 입의 고마움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눈과 귀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도 있습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오늘 저는 주로 기도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기도할 때 마음의 눈은 활짝 열려 하느님의 신비를 보고,

마음의 귀는 활짝 열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입은 활짝 열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바로 이렇게 하느님을 보라고 있는 눈이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있는 귀요,

하느님을 찬미하라 있는 입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비로소 영성생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성도 사라져

눈먼 감성, 눈먼 지성만 남게 되어 참 불완전하고 위태한 삶이 됩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입니다.

교회의 전례력 역시 기도에 전념하도록 되어있습니다.

9월은 순교자 성월,

10월은 묵주기도 성월,

11월은 위령성월,

모두가 기도의 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두입니다.

하여 우리 수도승들을 기도의 사람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여 수도승은 기도에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비단 수도승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도에 프로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힘은 바로 믿음의 힘, 하느님의 힘을 뜻합니다.

 

 

왜 기도하느냐?

‘살기위하여’ 입니다.

아주 절박한 말마디입니다.

밥을 먹어야 살 듯 기도해야 영혼이 삽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눈이, 마음의 귀가 활짝 열려

생명의 하느님과 소통해야 영혼이 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할 수 있겠는가?

답은 하나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저절로 기도입니다.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사랑의 대화가 기도입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별다른 비법이 없습니다.

환경이나 감정에 좌우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늘 하느님과 원활한 소통 중에 행복한 삶입니다.

 

기도 잘 하고 싶은 욕심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성인들은 누구보다도 기도 욕심이 많았던 분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니 하느님을 알고 싶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기도할 수뿐이 없었던 성인들이었습니다.

참 기쁨은, 참 행복은 기도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하느님,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

 

아침 성무일도 시편 중에 나온 구절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 역시 기도에 대한 욕구가 남달랐음을 봅니다.

보고 배운다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것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즉시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 합니다.

끊임없이 배워 익혀야 하는 기도임을 깨닫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예수님이 평소 해 오신 기도로

예수님의 단순 소박한 삶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는 기도입니다.

개인기도이기보다는 공동기도 성격의 성격을 띱니다.

하여 우리는 매일 공동 전례기도 때 주님의 기도를 함께 바칩니다.

특히 미사 중 양 팔을 펴들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순간은

말 그대로 미사의 절정이며

바로 여기가 주님의 기도의 자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간절하고 절실한 주님의 기도입니다.

우리 삶에서 꼭 필요로 하는 것들이 다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믿음을, 영성을 거울 같이 비춰주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런 주님의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향해 꼴 잡혀 가는 우리들입니다.

기도대로 형성되는 우리의 삶이요 기도가 우리를 만듭니다.

함께 바치는 주님의 기도 시간,

그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위로 하느님과의 완전 소통 시간이자

옆으로 형제들과의 완전 소통 시간입니다.

이렇게 한 마음으로 함께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공동체를 정화하고 성화하고 치유, 구원합니다.

오늘 루카 복음의 주의 기도는 다섯의 청원으로 요약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말 그대로 마르지 않는 ‘기도의 샘’ 같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함께 아버지를 향해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1독서에서

성격과 사명이 판이한 베드로와 바오로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또 판이한 우리 공동체 형제들이 이렇게 평생 함께 살 수 있는 것도

끊임없이 공동체의 중심인 하느님 아버지를 향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예수님처럼 친숙하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지 이게 평생 과제입니다.

 

참으로 날마다 일용할 양식 모두를,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청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아버지께 용서 받음으로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기도입니다.

온갖 유혹에서 벗어나

참으로 우리를 단순 소박한 삶을 살게 하는 기도요,

환상의 거품이 말끔히 사라진,

투명한 현실을 살게 하는 본질적인 기도입니다.

하여 우리의 마음을 비워 기쁨과 감사로 가득 채워주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매일의 거룩한 미사 때 마다

가난한 빈 손 활짝 펴들고

아버지를 우러러보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시고

일용할 양식인 성체를 받아 모시기 바랍니다.

이 보다 큰 은총도 축복도 없습니다.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시편36,10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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