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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모성애의 위험성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09 조회수757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7 주간 토요일 -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

 


 

보통 성지는 성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요즘 한국은 성지가 아주 잘 가꾸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유럽도 매우 많은 성지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지는 비단 그분이 사셨던 아씨시만이 아니라 그분이 돌아다니신 모든 곳이 성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스쳐간 곳은 모두 성지가 되었습니다.

성지는 거룩한 땅이란 뜻이지만 그 거룩한 땅에 사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거룩해 질까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그 성지 안에 산다고 해서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지는 다만 성인들의 발자취를 기리고 그 분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분들이 스쳐 지나갔다고 해서 그 땅이 거룩해지고 그 안에 사는 사람도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순례자들은 성지에 도장을 찍고 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성인들의 삶을 본받고 그 삶을 실천해 나갈 때 비로소 거룩해집니다. 성지 자체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예수님의 성지엔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걷고 예수님께서 사신 곳에 살아도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통적인 사고방식은 거룩한 것과 접하면 거룩해지고 부정한 것과 접하면 부정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사제나 레위인들이 부정해지지 않기 위해서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고 멀찌감치 돌아서 성전에 기도하러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사고방식을 고치는데 매우 큰 노력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거룩한 것과 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거룩한 뜻을 실천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당신도 죽기까지 아버지 뜻을 실천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정통적인 이스라엘 사람의 생각을 지닌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이렇게 칭송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성인들이 스쳐지나갔던 곳들이 성지가 된다면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열 달을 머무신 성모님의 모태와 젖을 먹인 가슴은 얼마나 거룩해 졌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성모님께서 단지 당신을 잉태하셨고 젖을 먹여 키운 것 때문에 복되시고 거룩하게 되신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이 거룩하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성모님께서 “주님의 종이오니,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시며 하느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여인 중에 복되신 여인이 되신 것이지 단지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에 복되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당 다닌다고 해서, 성경을 옆에 끼고 다닌다고 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당이나 성경 자체는 거룩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면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쌀이 있다면 그것으로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 것은 우리들 몫입니다. 먹지 않으면 그 쌀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유다가 예수님과 삼년씩이나 깊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있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거룩한 분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거룩해지지 않았기에 더욱 책망 받을 이유가 큽니다. 우리도 미사를 하고 성체를 영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다고 구원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면서도 성체의 참 뜻을 실천하며 살지 않았다면 더 큰 책망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기만 하면, 혹은 미사에 참례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좋고 거룩한 것을 지니고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배우고 익혀 삶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모성애의 위험성

 

미국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에서 오리건주에 이르는 지역에 서식하는 ‘코호’라는 연어의 모성애는 매우 유명합니다.

이른 봄 번식기가 되면 연어들은 몸에 홍색의 반점이 생깁니다. 그러면 그들은 강물을 거슬러 자신들이 태어난 곳으로 향합니다. 30-40cm 깊이의 차가운 물속에 알을 낳고 수정을 합니다. 그리고 수정이 끝나면 암수 모두 그 자리에서 죽어버립니다.

부화된 치어들은 어미들의 죽은 몸을 뜯어먹으며 자랍니다. 수온이 조금씩 오르면 이제 다른 물고기들이 먹이를 찾아 그 곳으로 모여듭니다. 아직 작은 치어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미 가시들 속에 몸을 숨깁니다. 가시가 매우 날카롭기 때문에 큰 물고기들로부터 보호받기에 안성맞춤인 것입니다. 어미는 새끼들이 살을 뜯어먹어 앙상하게 남은 가시들로까지 자녀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치어들은 다시 바다로 내려가 자신들 어미의 삶을 반복합니다.

 

아마 우리 어머니들이 이런 모성애를 지녔을 것입니다. 외국에 다니다보면 이런 것을 더 절실히 느끼는데, 부모들이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단연 아이들의 교육 때문입니다. 외국에 몇 년 살다가 임기가 끝나 들어가야 하는데도 아이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한국 교육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새로운 직업을 찾으며 잠시 나왔던 그 곳에 자녀들이 성장할 때까지 남아 살게 됩니다. 이렇게 부모의 삶은 아이들에게 맞추어져있습니다.

미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민족이 유태인과 한국인들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부모들은 힘들게 살아도 그 2세들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줍니다.

늙어서도 우리 부모들은 편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파고다공원에서 무료급식을 먹으면서도 자녀들을 위해 가진 것을 다 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인들은 돈이 없습니다. 어떤 갤럽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선호하는 나이 대는 40대 전후로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 할 때라고 나왔습니다. 노인이 되면 일은 하지 않아도 넉넉하지 못하니 선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가장 선호하는 나이대가 60이후입니다. 왜냐하면 일도 하지 않고 연금도 넉넉하게 나와 여유 있게 여행도 다니고 인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교육열 때문에 이렇게나마 살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도 몰라주는 자녀들이 많다는 것을 들을 때는 우리 교육열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면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1위가 되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어떤 여인은 예수님의 멋진 모습을 보며 이렇게 소리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생각을 이렇게 바꾸어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즉, 모든 여인 중에 복되신 성모님께서 복되신 이유는 멋진 아들 예수님을 가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분이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따랐기에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구원을 책임져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아들이 유다와 같은 못된 인간이라고 하여 그 어머니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의 구원은 각자에게 달린 것입니다.

헬레나 성녀가 유명한 것은 그 아들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두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아들이 없었어도 성녀였을 것입니다. 모니카 성녀도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아들로 두었기 때문에 아니라 그녀가 성녀였기에 아들도 성인이 된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 때문에 나의 신앙생활까지 시간을 빼앗긴다면 그 때는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결국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는 자녀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주님께 드려야 할 시간까지 빼앗기며 자녀에게 희생한다면 둘 다 잘못 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신앙부터 가장 먼저 챙겨야하는 것입니다.

 

 

 

< 아베마리아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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