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참 행복" - 10.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09 조회수410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0.9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갈라3,22-29 루카11,27-28

 

 

 

 

"참 행복"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면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볼 수 있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고, 하느님을 향해 걸을 수 있으면 참 행복입니다.

그러니 살아있다는 자체가 행복입니다.

행복을 옆에 놔두고 행복을 못 사는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아침성무일도 독서 시 1티모 6장의 몇 구절이 생각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워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차지하라는

참 고무적인 권고입니다.

 

“안전하지 못한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어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십시오.”

 

보이는 세상 것들이 아닌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묵상으로 시작되는 강론입니다.

하느님을 떠나 행복을 찾는 것, 말 그대로 연목구어입니다.

'번쩍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All is not gold that glitters)'라는

속담도 있듯이,

행복이라고 다 행복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참 실재이자 참 행복인 하느님을 잊고

거짓 행복이 참 행복인양 착각하며 환상 속에 살아갑니다.

결과는 허무요 공허입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시편 말씀처럼 우리의 참 행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하느님을 찾아 수도원에 온 하느님의 사람인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막연하지 않습니다.

바로 행복과 자유를 찾아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은 행복과 자유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생의 궁극 목표도 자유와 행복입니다.

자유로울 때 행복하고 행복할 때 자유로우니

자유와 행복은 함께 감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자유와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떠나 자유와 행복을 찾으니

찾을 길은 요원합니다.

바로 이게 현대인들의 비극입니다.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주님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제 영혼에 기쁨을 주소서.”

 

생각나는 시편 구절입니다.

영혼과 영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신은 무너져도 영혼은 무너져선 안 됩니다.

육신이 약해질수록 반대로 영혼은 강해져야 합니다.

영혼이 강하다는 것은 겸손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찾는 영혼들,

육신의 고통과 시련을 통해 영혼은 정화되어

믿음과 사랑과 희망만 남게 되어 순수한 영혼이 됩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만 남아 있는 순수한 영혼, 겸손한 영혼입니다.

 

깨달음을 통한 내적 자유, 이게 진정한 자유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때

비로소 깨달음을 통한 체험적 앎이 보는 눈을 바꿔주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내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사도 바오로 진정 깨달음의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자식 가진 어머니들의 보편적 본능의 표현입니다.

‘예수님 같은 자식을 둔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선망 가득 담긴 고백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희망을 둘로 압축하면 아마 자식과 돈일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녀교육과 재산 증식에 올인(all-in)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바로 여기 참 행복이 있습니다.

‘오히려’라는 말마디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떤 여자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시선을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향하도록 이끕니다.

바꿔 말해 ‘그렇다. 나를 낳아 키운 성모 마리아는 행복하지만,

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기에 행복한 것이다.’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래서 성모 마리아는 믿는 이들의 모범이요 교회의 어머니라 부릅니다.

결국 세상의 보이는 행복 넘어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게서

참 행복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보이는 것들에 행복을 두었다가 낭패를 보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니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참 행복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때 참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구비한 우리들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이런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바로 이 하나를 깨닫게 하는 은총의 미사시간입니다.

이 하나를 깨달을 때, 하나이신 하느님 안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 때 자유요 행복이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려는 의욕을 왕성하게 해 줍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라는 요한복음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도 예수님께, 하느님께 닿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 같아도

한 뿌리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에게서 나온 형제들이기에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하나 되어 참 행복을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