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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10일 야곱의 우물- 루카 17,11-19/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10 조회수341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1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18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19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희 눈을 열어 주시어 하느님의 선물들을 알아볼 수 있게 하소서.

독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루카 17, 11) 우리는 루카복음에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은 곧 “세상을 떠나실 일” 입니다. (9, 31) 예루살렘은 그 죽음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질 장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신다는 것은 이미 수난 예고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사실 수난 예고는 벌써 두 번 되풀이되었고, 이제 한 번 남았을 뿐입니다.
 
수난을 향해 가는 이 길목에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마주 옵니다. 가까이 올 수 없었던 그들은 멀리서 큰 소리로 자비를 청합니다. 소리를 높이는 것만이 그들이 예수님께 가닿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들을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격리되어 살던 나병 환자가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인다는 것은, 병이 다 나았음을 확인받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아직 자신들의 몸이 깨끗해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바로 사제에게 간 것을 보면, 그들은 병이 곧 나으리라는 분명한 믿음은 가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열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똑같은 치유를 받습니다. 여기까지는 열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병이 나은 사람들 가운데 아홉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왜 사마리아 사람이 돌아왔을까요 ?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 요한복음에서는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는 설명까지 덧붙입니다.(4, 9) 같은 나병 환자라도, 사마리아인에게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귀 기울여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당연히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조건이, 그에게 무상으로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알아볼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다른 아홉 사람도 나병에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치유를 베풀어 주신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계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 기적 안에서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치유는 몸이 낫는 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치유 안에서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을 알아보는 사람, 그래서 그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 그 사람은 ‘구원’ 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성찰
오늘 복음에서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보는 데, 그리고 그 선물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데 있습니다. 매일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선물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주어지는 것들에 너무 습관이 되어버리지 않는 깨어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든 사람으로부터이든, 처음 어떤 호의나 사랑을 받았을 때는 감동하고 고마워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지고 나면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적인 일에서 예를 찾아봅니다. 직장에서 일이 힘들다고 생각되면, 첫 출근하던 날을 떠올려 보십시오. 저는 아직 취직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지금도 그날의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 2월 1일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근’ 이라는 것을 해본 것입니다. 일을 할 기회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그날, 이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리라, 지금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무디어지지 않도록 늘 나를 일깨우리라고 다짐했습니다.
하느님의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카복음을 계속 따라간다면,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그분은 구원의 선물로 당신 목숨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 열 사람의 나병 환자에게 모두 치유를 베푸셨듯이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그 선물을 주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는” (1베드 1, 12)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선물에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에 감사하는 사람은 구원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루하루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듯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만, 오늘 나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선물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때 그날 나는 구원의 열매를 맛볼 것입니다.

기도
주님을 찬송하여라, 선하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누가 주님의 위업을 말할 수 있으며 그 모든 찬양을 전할 수 있으리오 ? (시편 106, 1 – 2)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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