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수시로 이스라엘 율법을 어기십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다 곤경에 처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밭의 밀 이삭을 훑어 먹어도 아무 나무람이 없습니다. 유다인으로 태어나 유다인으로 자란 유다 청년이건만, 그의 행동과 사고방식과 영혼은 유다인의 틀을 훌쩍 넘어서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에 스스럼이 없는 까닭은 그 율법에 숨은 참 뜻을 헤아리셨기 때문이겠지요.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이 율법 형식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율법이 본래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앞당기는 도구임을 망각했다고 ‘속과 겉’ 이라는 말로 일깨워줍니다. 또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이들을 하느님께 버림받은 죄인으로 낙인찍은 교회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빠져 있는 것은 우리가 어쩌면 더 한 수 위인지도 모릅니다. 외모지상주의와 조건만을 따져 사람을 판단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속에 있는 것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경우는 매우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그러니까 그 속에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겉도 속도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하십니다. 겉이 대단하고 중요한 만큼 속도 소중히 가꾸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사실 하느님이 내 속에 담아주신 것을 잘 살려낼 때 내 겉모습도 참 보기 좋아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유정원(가톨릭여성신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