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찬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너희는 불행하여라 !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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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허나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한 구절씩 짚어 가며 묵상을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토대로 우리네 일상의 삶 내지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면서 궤도 수정을 할 수 있다면 많은 유익함이 있겠습니다. 그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마음과는 달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맙니다, 라고만 하고 있어서는 기도를 통한 힘찬 기운은 길어 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깊이에 대한 더 큰 목마름이 견인차 역할을 해야, 그저 단순한 자기 반성 차원을 벗어나 새로운 지평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겉발림의 피상적 차원에 만족하는 사람이 어떻게 더 깊은 차원에 들어가서 새로운 맛을 보게 되는지 체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앎이 훨씬 더 깊은 곳에 뿌리박고 서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색내고 자기를 내세우고 입만 떠들어 대면서 사는 모습도 나름대로 기쁨을 맛보고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허나 그 기쁨이나 생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것도 있음을 기도를 통해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한 수 처지는 기쁨이나 생명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복음 구절들은 쉬 이해가 되고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다면 예수님 생각처럼 살아내게 되겠지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의 앎이 지식 차원에 머물고 있으며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유시찬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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