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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16일 야곱의 우물- 루카12,8-12 묵상/ 성령은 어디에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16 조회수393 추천수1 반대(0) 신고
성령은 어디에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드넓은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참된 복음이며 하느님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었지요. 이 증언과 복음 선포 역사는 목숨을 건 용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한편 그리스도교 역사상, 대대적인 선교는 식민지를 개척하던 15세기 말에 시작되었습니다.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서인도’ 를 발견하고, 1497년에 바스코 드 가마가 인도를 발견” (「여성과 그리스도교 (3)」) 한 것이 선교에 박차를 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와 복음 선포는 예수님 때와는 정반대 양상을 보입니다.
 
15세기 말에 교황은 세상이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놀랍도록 신속한 아메리카 정복은 그리스도교의 연민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았고, 특정한 사람들은 본래부터 노예로 지어졌다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신조를 가지고 인간과 하위 인간을 나누었지요.” (같은 책) 이런 가톨릭의 관점에 따라 하위 인간은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치부되었습니다. “아메리카인들은 성찬례에 참여할 수 없었고, 당연히 토착민 성직자도 없었던 것입니다.” (같은 책)
 
유다 회당이나 관청에 끌려가 어떻게 증언을 할지 걱정하던 처지에서 다른 민족과 다른 신앙인을 동등한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이 역전극은, 선교가 얼마나 그 본뜻에서 멀어져버렸는지 확인시켜줍니다. 성령은 그 때 그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셨을까요 ?
유정원(가톨릭여성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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