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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10.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18 조회수501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0.17 연중 제29주일

탈출17,8-13 2티모3,14-4,2 루카18,1-8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꽃보다 아름다운 열매들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가을은 두 말 할 것 없이 기도의 계절입니다.

열매의 수확과 단풍의 계절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익어가는 아름다운 영혼의 열매요,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사랑으로 물들어가는 영혼의 단풍입니다.

 

왜 눈 들면 늘 푸른 하늘입니까?

늘 하늘같은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눈 들면 하늘입니다.

과연 내 영혼은 어느 상태에 있는 지,

우리 삶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기도의 계절인 가을입니다.

저절로 떠오른 강론 주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입니다.

 

 

 

순수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을 어여삐 여기십니다.

늘 하느님 친히 보호자 되어 주시는 마음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마음의 호수에 떠오르는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순수하게 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를 순수하게 만듭니다.

말씀으로 살 때 순수한 마음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막연하지 않습니다.

말씀 사랑으로 직결됩니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직접적 통로는 말씀뿐입니다.

부단한 말씀 공부, 말씀 묵상, 말씀 기도, 말씀 사랑의 수행으로

깨끗해지는 마음입니다.

다음 시편 1장의 말씀이 참 감미롭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 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말씀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을 그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름대로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데 참으로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말씀을 들으라고 있는 귀요,

말씀을 말하라고 있는 입이며,

말씀을 살라고 있는 몸입니다.

보고 배울 스승이 없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성령을 친히 스승으로 삼아 하느님을 보듯 성경을 보며

성경말씀을 배우면 충분합니다.

말씀과 하나 되어 살 때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 행복한 삶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요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항구한 기도 있어 항구한 믿음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양분 끊기면 믿음 나무도 서서히 시들어 죽습니다.

복음의 어느 과부와 탈출기의 모세가 항구한 기도의 모범입니다.

 

주님 친히 제자들이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려주신 예화입니다.

끈질긴 간청으로 고약한 재판관의 올바른 판결을 받아낸 어느 과부처럼

항구한 기도로 하느님의 응답을 받아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밤낮으로 항구히 절실히, 간절히 기도할 때

하느님은 당신 최상의 방식으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줄다리기 싸움입니다.

끈질긴 간청으로 고약한 재판관의 올바른 판결을 받아 낸 어느 과부처럼,

낙심이나 좌절로 무너짐 없이 끝까지 기도하여

하느님의 응답을 받아내는 것은

그대로 하느님께 대한 기도의 승리를 뜻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항구한 기도를, 항구한 믿음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더욱 분발케 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자 믿음의 사람입니다.

탈출기 모세의 기도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공동기도의 위력을 새삼 실감합니다.

삶은 전쟁입니다.

삶의 전쟁터에서 홀로 싸우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모세는 영웅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난한 종입니다.

오늘 탈출기에서 모세의 승리는

공동체의 승리이자 하느님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언덕 아래에서는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한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언덕 꼭대기에서는 모세가 하느님의 지팡이를 잡고 기도합니다.

아래에서는 싸우고 위에서는 기도하고…

혼연일체가 된 영적전쟁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힘이 빠져

하느님의 지팡이를 잡은 손이 아래로 내려가 패색이 짙어지자

곁에 있던 아론과 후르는 기민하게 모세를 도와

마침내 전투를 승리로 이끕니다.

공동체가 하나 되어 끈질기게 싸웠던 결과

하느님의 승리, 이스라엘 공동체의 승리였습니다.

 

언덕위의 모세와 두 사람은 그대로 치열한 세상 전쟁터에서 싸우는

믿는 이들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불암산 요셉 수도원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또 세상 삶에서 분투하는 남편이나 자녀들을 위해

집에서 기도하는 가족들을 상징합니다.

이 거룩한 10월 묵주성월,

모세의 하느님의 지팡이 대신 묵주를 늘 손에 들고

삶의 전쟁터에서 분투 중인 가족이나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믿음으로 함께 살아야 영적전쟁의 승리입니다.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항구한 기도에서 항구한 믿음이요 이어 항구한 삶입니다.

항구한 삶이 충실한 삶입니다.

꽉 찬 열매 같은 삶이라 하여 충실(充實)입니다.

말씀의 열매, 기도의 열매, 믿음의 열매는

하느님을 중심한 충실한 삶으로 들어납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티모테오에게 충실할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그대로 오늘 교회지도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만

이런 충실한 삶의 자세는 예외 없이 믿는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일상의 주어진 삶의 자리에, 의무에, 책임에 항구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시든

늘 제자리에서 항구히 제 책임을 다하는 충실한 이들입니다.

바로 이런 충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느님께 대한 충실입니다.

‘늘 제자리에서 하느님께 충실함’은

바로 우리 분도수도승들의 첫째 서원인 정주가 목표하는 바입니다.

성경 몇 구절이 생각납니다.

 

“이사악과 야곱과 모세 그리고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던 모든 이들은

  많은 곤란 가운데서 하느님께 충실하였느니라.”(유딧8,23).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마태45-47).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

 

매사 제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하느님께 충실한 이들 그 자체가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순수하게 살아야합니다.

말씀으로 살 때 순수한 삶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로 살 때 믿음의 삶입니다.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늘 하느님을 바라 볼 때 충실한 삶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수도승들이며 믿는 이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 겸손한 이들입니다.

저는 오늘 1독서

모세의 이야기와 복음의 과부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웃었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과 유머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적일수록 신적입니다.

자기를 비워 가난하고 겸손해질수록 여유와 유머도 솟아납니다.

아론과 후르가 모세의 양팔을 부축하여 들어 올리고 있는 장면

얼마나 인간적이고 재미있습니까?

아마 모세도, 하느님도 웃으셨을 것입니다.

끈질기게 지치지도 않고 고약한 재판장을 졸아대

소원을 달성하는 어느 과부는 얼마나 인간적이고 또 재미있습니까?

믿음에서 나오는 인간성이요 낙천성의 유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 되어 충실하게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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