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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시대의 구현과 신시대의 구현 [깨어있는 종은 행복하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19 조회수382 추천수3 반대(0) 신고
 
 
 
"지금 이 시대에도 은총으로 선택된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1, 5>
 
 
 
 
 
구시대에 깨어있다는 것은 '정의 구현' 이다.
신시대에 깨어있다는 것은 '사랑 구현' 이다.
 
실로 '사랑의 구현'은 부족함이 없으며
어느 시대이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름아닌 '사랑의 모상' 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1요한서 4, 8>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요한서 4, 7>
'하느님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 입니다.
 
'정의'라는 명분을 걸고
사랑을 거스리는 경우는 사람을 해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주님을 반대한 헤롯은
'정의'를 내걸고
'사랑'을 반대하여 무죄한 아기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아기 그리스도의 탄생은
'사랑의 탄생' 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에세서 왔습니다.
헤롯은 '사랑'을 멸시하였던 것입니다.
 
'정의'를 걸고
'사랑'을 거스린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됩니다.
 
하느님도 자기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자기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구시대에서는
'독재를 거부하는 ㅡ 정의 구현'이
시대정신이 되지만
 
신시대에서는
'반민주를 거부하는 ㅡ 사랑 구현'이
시대정신이 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하느님께 대하여 일관성 있게 바라봄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사랑에 대하여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시대의 '정의 구현'이 변질되면
'사랑 구현'이 신시대의 가치로 자리매김 합니다.
 
'사랑'은 아무리 내걸어도
생명과 평화에 이르게 하지만
 
'정의'라는 명분 아래에서는
죄악이 자행되어지기도 합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언제나 '사랑' 입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 은총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코린토서 2, 5>
 
 
'살아있는 믿음'은
행위가 아니며
은총입니다.
 
행위는
먼저 은총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은총은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힘은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이 작용하면
'은총의 힘'이 작용하면
믿음의 행위로 드러납니다.
 
믿음의 행위는
'정의의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부적절한 믿음의 행위는
'사랑의 구현'을 거스리며
 
'죽은 믿음'이고
"진리 안의 사랑"도 아닌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시대를 이끌어 가십니다.
 
진리를 거역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정의'도 될 수 없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사랑의 정의'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구시대에 적합한 '정의 구현'이
변질되면
 
성령께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랑 구현'으로 이끌어 가신다 할 것입니다.
 
사랑의 구현은
하느님의 나라를 구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사랑의 나라'입니다.
 
사랑에 깨어있을 때,
하느님께 깨어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깨어있는 종은
영원토록 행복합니다.
 
사랑의 나라에 적합한
인간의 모습은
틀림없는 '사랑의 모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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