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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0 조회수982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Much will be required of the person entrusted with much,
and still more will be demanded of the person entrusted with more.
(Lk.12.48) 
 
 
제1독서 에페소 3,2-12
복음 루카 12,39-48
 
신학교를 함께 다녔던 동창 신부의 본당에서 강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본당 신자들과 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는데, 한 자매님께서 제게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저희 본당 신부님께서 그러시는데 신부님 신학생 때에는 말도 잘 못하고 조용하셨다면서요? 솔직히 지금 모습을 보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제 모습과 예전 신학생 때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제 스스로도 분명히 느끼고 인정합니다. 저는 정말로 말도 잘 못하고 조용히 생활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말 잘하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다른 동료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현재, 저는 말을 못한다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으로 강의도 많이 다니지요. 또한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 저를 향해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해주십니다. 신학생 때 바쳤던 저의 기도를 주님께서 분명히 들어주신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요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바쁩니다. 조금만 여유 있게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주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더 열심히 살아야 했고 또 바쁘게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또 다른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저의 모습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요?

제가 본당 신부 때를 떠올려 보면, 신자들에게 본당에서의 단체 직책을 맡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능력도 있고 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능력도 없고 여건도 좋지 않다면서 봉사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습 역시 저처럼 또 다른 욕심을 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많은 것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욕심으로 인해, 감사하지 못했고 제대로 봉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을 향해 따끔한 말씀을 하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던 우리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 많은 것들에 만족하지 못했고 그래서 주님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너에게 많이 주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청구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니? 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 거야?”

이제 더 이상 불평과 불만을 던지지 말고, 주님께서 주신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더 열심히 생활해야겠습니다. 많이 받은 만큼 많이 드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인생은 짧지만 사랑이 깃든 일은 오래간다(브라이언 트레이시).



 

거짓말(조인선, ‘좋은생각’ 중에서)

작년에 유치원 다니는 큰딸이 원생 대표로 답사를 했다. 그래서 올봄 동시 낭송 대회 때, 또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아이에게 혹시 상 받았느냐고 물으니 웃으며 받았다고 했다. 보여 달랬더니 선생님이 “가져가면 잃어버리니 유치원에 두고 가라.” 하셨단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어머님이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보라고 하셨다. “부모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나 봐요. 예쁘게 봐주세요.”

일곱 살이 되도록 딸아이의 거짓말은 처음이라 충격이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나도 거짓말을 많이 했다. 소를 키우고 생활하는지라 장사꾼들과 거래하는데 새끼를 두 번 낳았다고, 비육 기간은 몇 개월이라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거짓말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돈이 뭔지 양심에 슬픔도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노총각 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결혼이 급한 터라 두 번째 만남에 기대가 컸는데 상대방은 내 기대와 정반대로 미안하단 말을 전하러 나왔다고 했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화부터 나서 “어머님이 아픈데도 당신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라고 거짓말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도망쳤다. 그녀가 자리에 나온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했는데 몹시 후회스럽고, 지금까지 그녀를 소개해 준 후배 볼 낯이 없다. 사랑보다 욕심이 앞서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뒤 서른여덟에 국제결혼을 했다. 아내는 베트남 사람이다. 몇 년 전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방송국에서 아내의 학력을 묻지도 않았는데 대졸이라 했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던 아내는 결혼한 지 3년이 되어서야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고통스럽게 고백했다. 그때 나는 아내의 자존심을 보았고 사랑을 보았다. 내 헛된 허영심도 보았다.

그동안 욕심 담긴 말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준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시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 그래야 울림이 있고 떨림이 있다. 그런데 큰딸의 거짓말은 그대로 시가 된다. 감동을 준다. 돌이켜 보니 그 마음이 사랑이라면 나의 따뜻한 한마디에 세상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Bolero, Les Uns Et Les Au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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