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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0주일 본문+해설+묵상>
작성자장종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0 조회수358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30주일


제1독서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집회서의 말씀이다. 35,15ㄴ-17.20-22ㄴ

15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16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17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20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21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 22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17-18.19와 23(◎ 7ㄱ)

◎ 가련한 이가 부르짖자 주님께서 들어 주셨도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내 입에 늘 주님에 대한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이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들은 듣고서 기뻐하여라. ◎

○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맞서시니,

그들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서 없애시기 위함이로다.

그들이 울부짖자 주님께서 들으시어,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도다. ◎

○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시도다.

주님께서 당신 종들의 목숨을 건져 주시니,

주님께 피신하는 이는 아무도 죗값을 받지 않으리라. ◎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6-8.16-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2코린 5,19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20(19),6

우리는 주님 구원에 환호하며,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높이 들리라. 

 

해설과 묵상


제1독서(집회 35,12-13.16-18) 해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고아, 과부,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어 공정한 판결을 내려 주신다>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참된 예배에 관한 집회서의 말 가운데서(34,18-35,18), 오늘 독서는 풍성한 제물을 가지고 주 하느님을 달래 보려하는 경신례의 위선을 단죄한다.

하느님께서는 공정한 분이시다. 사람을 결코 편애하거나 차별하시지 않는다. 각 사람에게 자기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이고 그 지향하는 바에 따라 공적을 판단하실 것이다(22절). 하느님 앞에는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 따로 없다. 키가 크고 잘 생기고 귀티 나고 재주 좋다 해서 달리 호감을 갖지 않으신다. 오히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고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 의지할 데 없는 고아와 부랑아와 전과자와 과부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고 그런 사람들의 부르짖음과 호소를 귀 기울여 듣고 계신다. 그 하느님께서 어느 날엔가 허욕에 사로잡힌 오만한 자들의 무리를 모조리 굴복시키고 불의한 자들의 권력을 꺾어 버리실 것이다(21절).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겸허한 사람들이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며 당신께 감사드리고 찬양하는 예배와 전례를 향기로운 제사로 흡족하게 받아들이신다.


화답송(시편 34[33],2-3.17-18.19와 23[◎ 7ㄱ]) 해설

<가련한 이가 부르짖자 주님께서 들어 주셨도다>


시편 가운데서 ‘올바른 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똑같은 뜻을 가진 표현이다. 극심한 고뇌에 빠져 있으면서도 하느님께 끝까지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가난한 사람이요 올바른 사람이다.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 자기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똑똑히 알고 사는 사람들이라야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으며 주님을 찬미할 수 있고, 부질없는 번뇌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악을 일삼고 악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노려보며, 그들의 이름을 땅에서 없애버리실 것이다. 어느 날엔가 역사기록은 악한 이름들의 본모습을 만천하에 발가벗길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은 겸허한 사람들의 이름만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고 자기가 알려지지 않음을 서러워할 필요가 없다. 가엾은 무명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주님께서 똑똑히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제2독서(2티모 4,6-8.16-18) 해설

<나는 이미 피를 뿌려

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의 결론에서 바오로는 자기 심경을 절절하게 내보인다. 자기도 그리스도를 따라 피를 흘려 희생당할 각오가 서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의롭게 판결을 내리는 주님께서 다시 올 당신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과 자기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 주시리라고 확신한다. 바오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다가 사형을 당하게 되리라 예감하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

바오로는 자기가 붙들려 처음으로 재판정에 설 때, 한 사람도 자기를 변론하지 않고 모조리 도망쳤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엄한 벌을 받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서운하고 야속해도 그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회개할 가능성을 믿고 바라는 그의 그리스도다운 태도를 엿보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하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하셨다. 바오로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사람들의 호감이나 인기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과 힘에만 의지했다.


복음(루카 18,9-14) 해설

<하느님께서는 거짓된 독선을 증오하시고,

부서지고 낮추어진 마음을 어여쁘게 보신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행진이 그 절정에 도달하려 한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마지막 때에,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진리와 외침에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서 거짓 안정과 안보 속으로 숨어들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하고 무시와 천대를 받아 찌든 군상들이 형언할 수 없는 구원을 체험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같은 촉박한 상황 속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생생하게 그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참조. 루카 9,51-19, 29).

루카 복음서에만 나오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는 ‘자비의 비유’에 속한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열려 있지만, 인간차별을 일삼으면서도 자기만 옳다고 착각하는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가난하고 멸시받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선포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애걸한 세리처럼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고 크고 작은 자질구레한 잘못을 무수히 저지르며 멸시만 한껏 당하는 볼품없는 인생들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무력함과 죄 많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용서와 자비를 간구할 때, 그런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고 당신 자녀로 삼아 주신다.

헛된 욕망과 자기 과시욕에 사로잡혀 있고 가련한 사람들의 곤궁한 처지와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예배에 착실히 나가고 헌금을 어김없이 바친다고 해서 그것이 천당 가는 권리증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재물과 명성을 누릴 처지가 되지 못하고 고통스런 삶에 허덕이고 돌멩이처럼 채이며 굴러다니는 하찮은 인생들이 하느님께 바라고 애소할 때,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품에 안으실 것이다.


묵상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하느님께서 오만방자한 바리사이와 부끄러워서 얼굴도 감히 쳐들지 못하는 세리에 대하여 내리신 판결은 실로 하느님께서 온 인류 역사에 내리시는 판결인 것이다. 그 판결은 모든 시대에 걸쳐 각 개인과 집단에 대하여 내리시는 판결이다.

하느님께서는 추상적인 외적 기준에 따라 판결을 내리시지 않는다. 모든 사람과 집단을 당신 앞에 발가벗겨 놓고, 있는 그대로 정당하고 정확하게 그 의도와 그 행실 그대로 판결하신다.

사람은 본래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 앞에 당연한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도무지 없다. 당신과 누리는 영원한 행복은 단지 거저 받은 무한한 선물일 따름이다. 하느님께서는 그 무한한 복을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만큼 주실 따름이다. 당신 앞에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자기 의로움과 그 대가를 당연한 권리처럼 요구하는 바리사이들이 당신은 지겨우셨던 것이다. 그 바리사이에게는 실상 무식하고 막돼먹은 숱한 사람들이 벌레만도 못한 죄인으로만 보였다. 그 못된 사람들은 분명 벌을 받고 지옥에나 떨어져 마땅하다고 여겼다.

멸시와 천대에 길들여진 세리도 전전긍긍하며 얼굴을 깊숙이 숙이고 자기가 몹쓸 죄인임을 자인한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죄인취급 받는 그 세리를 받아들이신다. 하느님께서는 세리, 창녀, 나병환자, 불구자, 정신병자, 노역에 시달리는 사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인생들을 받아들이신다. 가난한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또다시 험악한 변두리 인생을 싸우듯이 살아가야 하는 지지리도 복 없는 인생들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신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경제적인 침략과 전쟁의 위협 속에 억압과 착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발버둥치면서 사람 이하의 죄인 취급을 당하는 인류 대다수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신다. 부유한 나라의 예의바른 사람들 보기에 자기 집에서 기르는 애견만도 못한 온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신다. 유다인들이 선조나 자기들이 죄를 지어 인과응보로 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임에 틀림없다고 여기던 사람들, 날마다 온종일 천한 일에 시달리는 형편없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신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잘나고 선민이고 의인임을 자부하는 위선자들을 버리고, 당신이 아니면 다른 아무 데도 기댈 데가 없고 다른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가련한 인생들을 받아들여 당신이 누리는 영원한 복락에 참여하게 하신다. 그 가련한 인생들에게 당신의 힘찬 현존을 체험하게 하고 그들에게 당신 자녀로서의 떳떳한 인권의식을 나날이 일깨우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따라야 할

진리이고 걸어야 할 길이시다>


버려진 인생들,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당신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인간해방과 인류해방의 주인공으로서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지은 일이 없으면서도 죄인취급을 받고 사형을 당하셨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멸시받는 죄인취급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참조. 2고린 5,21).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당신이 저주를 받으셨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당하게 받는 저주를 인내롭게 견디면서 사람들 사이의 온갖 차별과 장벽을 깨부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참조. 갈라 3,13).

그리스도께서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고뇌에 찬 기도를 바치셨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불의에 항거하여 극심한 고문을 받거나 사형을 당하는 순간에 실망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참조. 마태 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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