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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희망의 마지막 선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2 조회수604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9 주간 토요일 - 희망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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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학 다닐 때 마음에 들던 자매가 있었습니다. 용기가 없었고 또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마음만 졸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자매가 나오는 꿈을 꾸고 나도 그 자매를 좋아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매를 좋아하는 것을 알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자매가 누구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며 좋은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군대를 가게 되니 마음이 더욱 조급해져서 좋아했다는 말을 흘렸습니다. 그랬더니 군대에 가는 날 그 자매는 슬퍼서 밤새 많이 울었다며 아침에 기차 탈 때 눈물로 쓴 애절한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전 내용상 그 자매도 저를 좋아하는 줄 알고 군대 들어가서 편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편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에 친구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그 자매가 남자를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지만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사우나를 한 번 하며 안에 있던 땀과 모든 마음을 다 빼 내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 자매는 그 때 사귀던 사람과 결혼했고 그 다음에 만나도 그 이전의 감정은 좀처럼 솟아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자매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 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도 희망이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희망이 있으니 기다리는 것이고, 아무 희망도 없는데 기다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레아 사람들이 갑자기 죽은 사건에 관하여 그들이 특별히 죄가 더 많아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죽은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불러 가실 때는 사람이 더 이상 좋아질 가능성이 없을 때라는 뜻입니다.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하나 심었는데 삼년씩이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땅만 썩히지 말고 그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포도 재배인은 자신이 한 해만 더 노력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그 땐 베어버리자고 합니다.

그리고는 일 년 동안 잘 관리를 합니다.

만약 열매를 맺었다면 그 나무는 계속 열매를 맺도록 살려두었을 것이고 열매를 맺지 않았다면 베어졌을 것입니다.

 

저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가리옷 유다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가장 회개하기를 기다린 제자가 바로 그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도 해도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땐 예수님께서 포기하십니다.

최후의 만찬 때 “네가 해야 될 것을 어서 하여라.”하시며 그가 죄를 짓는 것을 내버려두신 이유는 바로 그 때가 예수님께서 손을 떼고 포기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넘어서서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하느님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사람을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발전하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한다는 뜻은 조금씩 발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앞으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면 하느님도 더 이상 그 사람을 살게 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 성인들이 일찍 돌아가시는 이유가 이미 완덕에 도달하셨기 때문이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한 수녀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빨리 죽는 복을 주실까요?”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 십자가가 가볍지 않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일 것이고 또 하느님 앞에 가도 크게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성녀이시기 때문에 빨리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빨리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이 세상에서 공로를 더 쌓아서 가기 위해 더 남아있기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공로를 쌓을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공로를 쌓을 수 있어서 인간이 천사들보다도 높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지만 동시에 희생의 공로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 나올 때 맨 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한 번은 그 분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최대한 공로를 많이 쌓아서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가야할 것입니다. 하느님도 그런 희망을 보시고 우리를 하루 더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루를 주셨다면 무엇을 그만큼 희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희망에 보답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오늘 하루도 가치 있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희망의 마지막 선

 

이구아수 폭포는 그 규모면에서 세계 제1의 폭포입니다. 저희는 도착하여 브라질 쪽으로 먼저 가서 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보았을 땐 그저 폭포 밑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들만 보일 뿐 그 밑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 수중기가 뿌옇게 올라오던 곳이 바로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 전까지 잔잔하게 흐르던 물이 일제히 한 곳으로 쏟아져버리는 것입니다.

그 소리와 규모에 압도되면서 왜 이 곳의 이름을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렀는지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번 떨어지면 살아날 가능성은 0%라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한 곳을 보게 되는데 바로 그 곳까지 오면 절대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 전까지는 배를 타고 왔다면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 장소를 지나면 더 이상은 발버둥 쳐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곳, 그 곳부터가 참으로 죽음인 것입니다.

 

살아있더라도, 다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희망이 없는 곳까지 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유다를 보내시며 ‘어서 네 할 일을 하라’고 하신 이유는 유다가 이미 그 선을 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아볼 수 없기에 손을 놓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갈릴레아 사람들을 죽인 것과, 또 실로암 탑이 무너져 사람이 열여덟이나 죽은 것을 통하여 이렇게 교육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갑자기 죽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그렇게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일찍 죽는 사람 중에 위대한 성인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하여 언제 올지 모르는 자신의 종말에 대비하라는 뜻입니다. 더 이상 회개하여 돌아올 희망이 없는 선까지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밭에 심어졌지만 3년째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말씀해주십니다. 주인은 땅만 버릴 이유가 없어 잘라버리려 하지만, 포도 재배인은 자신이 모든 노력을 다 할 테니 1년만 더 봐 달라고 청합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아주 희미하기는 해도 희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열매가 안 열리면 그 때는 잘라버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 성장해버렸는데 아무 쓸모없게 비뚤비뚤 자랐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잘못된 스케치 위에 이미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가도 그것으로 명작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미 불에 구워졌는데도 온전하지 못한 도자기는 그래서 망치로 깨서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 되 돌이킬 수 없는 상태, 그것이 죽음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누가 빨리 죽고 늦게 죽고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갑작스런 죽음들을 보면서 나도 예상치 못한 때에 죽게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꾸준히 사랑으로 내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되는 목표로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에겐 항상 희망이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런 희망을 절대 꺾지 않고 온전히 자라날 때까지 기다려 주실 것이란 뜻입니다.

 

 

 
  

<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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