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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3 조회수673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If you do not repent,
you will all perish as they did!
(Lk.13.3) 
 
 
제1독서 에페소 4,7-16
복음 루카 13,1-9
 
제가 지난주 휴가를 다녀오는 관계로 일주일 동안 새벽을 열지 못했었는데요. 그런데 내일부터 이틀 동안 또 새벽을 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을 이용해서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지방에 다녀와야 하거든요. 따라서 주일과 월요일의 새벽 묵상 글 그리고 새벽 방송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또다시 새벽 방을 비우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는 가보지 않았지만, 대만에 가면 고웅 박물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중국 고대 예술품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이외에도 다른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전시물이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것은 돋보기로 보도록 되어 있는 전시물인데요.

이 작품은 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는 레이먼드 매터슨이라는 사람이 양말과 구두끈에 엉켜 있는 실들을 풀어서 천 조각 위에 자수를 놓은 것입니다. 마약 중독자로 수감된 매터슨은 감옥에 있는 동안 심심풀이 삼아 스스로 터득한 기술로 조잡한 재료를 가지고 자수 그림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특이하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까요?

우선 그의 작품은 폭이 5.6센티미터이고 길이가 6.9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잘 모르겠죠? 문제는 이 작은 작품에 새겨진 자수입니다. 아주 작은 공간인데도 이 안에 볼을 던지는 야구 선수, 흰 천을 들고 항복하는 군인들의 모습 등 그 자수 그림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는데 있습니다. 그는 이 작품들을 머리카락 정도로 가늘게 쪼갠 실로 수를 놓아 만들었고 손톱 정도 크기의 천에 1,200번 이상 바느질하여 자수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작고 가는 실이 얼마나 초라해 보입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모였을 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박물관에 전시되는 큰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작은 것을 가지고 크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 충실한 자에게 큰 것을 맡기시겠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작은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더 큰 것, 보기에 좋은 것, 좀 있어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스스로를 뉘우쳐서 낮아질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회개한다는 것이 때로는 나의 못난 부분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낮아져야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를 낮추는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주님의 마음에 꼭 드는 모습이며, 주님의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행복이 뭐 별건가? 수고의 그릇에 담긴 밥 달게 먹으며 저 푸른 하늘 보고 살면 되지(채근담).




아름다운 청년(김정민, ‘좋은생각’ 중에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 옆에 앉은 청년이 조용히 통화했다. “일곱 정거장만 가면 돼. 미안해. 빨리 갈게.” 여자 친구와의 약속에 늦은 듯했다. 그때 한 소년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와 출입문 쪽에 기대섰다. 내 자리에 앉으라고 부르고 싶었으나, 부담스러울까 봐 그러질 못했다.

어느덧 하차할 역이 다가왔다. 나는 소년이 앉길 바라며 일어났지만 다른 승객이 앉아 버렸다. 씁쓸함을 뒤로한 채 출입문 앞에 섰다. 그때 아까 통화하던 청년이 일어나더니 내 옆으로 왔다. 그는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했다. 청년은 출입문 유리에 비친 소년을 계속 바라보았다. 소년이 빈자리를 발견하고 앉는 순간 청년은 웃었다.

청년은 내리자마자 전화했다. “역을 착각해서 5분 더 걸릴 것 같네. 미안해.” 여자 친구는 화난 듯했다. 내 생각에 그는 착각하지 않았다. 소년이 미안해할까 봐 미리 내렸을 것이다.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희생은 잃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것.” 당시에는 의미를 몰랐는데 청년을 보니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청년에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착해 빠져서 험한 세상을 어찌 살려고.”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모르는 소리 마세요. 청년은 당신들보다 지혜로워요. 자신의 것을 필요한 이에게 넘겨주는, 희생을 알거든요.”

청년의 여자 친구는 알까? 자신이 얼마나 근사한 남자 친구와 사귀는지.


 
 
 
John Mills -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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