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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24일 야곱의 우물- 루카18,9-14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4 조회수393 추천수6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9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14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서게 하소서.

독서
너무 잘 알려진 복음이고 더 이상 묵상할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언뜻 ‘다른 생각’ 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의 모습이 구차하고 궁색하게 보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꼭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야 했을까요 ? 그런 사람이 정말 의인이었을까요 ?
바리사이의 행동 자체에는 흠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강도짓이나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단식하고 십일조를 바치는 것에 대해 잘못한 일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의인이라고 해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 과 진정한 의인들은 구분되고, 루카복음 안에서도 예를 들자면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고 말합니다. (루카 1, 6) 이것을 보면 신약 시대에도 참된 의인은 하느님께 인정받는 성인들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의 올바름이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게 (18, 9) 만들 때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이 떠오릅니다. ‘다른 모든 죄악이 사람의 악행에서 나오지만, 교만은 선행까지도 손상시켜 헛되게 하기 때문이다.’ 선행뿐 아니라 다른 가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저 스스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매우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가끔 느끼게 되는 한 가지 생각을 적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훌륭한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스로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그 선물을 주신 하느님의 선하심을 알아보고 감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을 때 또한 그 선물을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지닌 것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려는 모습을 볼 때가 없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솔직히 ‘저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자신이 없구나.’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오히려 초라해 보입니다. 진짜 보물을 지닌 사람은 그렇게 초조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속물같이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자신만을 위해 그렇게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선물 자체까지도 ‘손상시켜 헛되게 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무엇인가 얻어내기 위해 그렇게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하는 사람의 처지가 불쌍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시 오늘 복음에 나온 바리사이를 바라봅니다. 하느님 앞에서까지 그런 식으로 자신을 포장해야 했을까요 ? “제가 다른 사람들  …과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1절)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내세우려 했던 그는,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리를 확보해야 했던 것인지 모릅니다. 알량한 무엇인가를 내세우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며 하느님 가까이에 한자리를 잡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요 ?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실 사람의 마음속을 다 아십니다. 바리사이나 세리가 하느님 앞에 자신을 어떻게 내세우든, 어떤 사람을 의롭다고 판단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14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구차해 보이게 만든다면, 하느님 앞에서는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시편 139, 1 – 2) 그런 하느님 앞에서는, 내 모습을 만들어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는, 진실하고 솔직한 삶이 중요할 따름일 것입니다.

성찰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 (루카 18,9) 이 한 구절에 오늘 복음의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의롭다고 스스로 내세울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길 것은 더욱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기준을 가지고 계시며, 이에 따라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4절) 하느님 앞에서는 내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릴 뿐입니다. 그분은 “가련한 이의 가엾음을 업신여기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시고 그에게서 당신 얼굴을 감추지도 않으시며 그가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들어주시는” (시편 22, 25) 분이십니다. 나의 가난함을 굽어보시는 분이시라면, 그 가난함을 덮을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 51, 19)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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