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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5 조회수942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0월 25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Woman, you are set free of your infirmity.”
He laid his hands on her,
and she at once stood up straight

and glorified God.

(Lk.18.14)
  
 
제1독서 에페 4,32-5,8 
복음 루카 13,10-17
 
 
연어과에 속하는 곤돌메기라는 큰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이 이 물고기를 가지고 인간의 좌절에 대해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우선 큰 어항에 곤돌메기를 집어넣고 이 물고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충분히 풀어 넣었습니다. 어항 속의 곤돌메기는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도 입만 벌리면 좋아하는 작은 물고기를 얼마든지 잡아먹을 수 있도록 했지요.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심리학자들이 곤돌메기의 먹이로 넣은 작은 물고기들과 곤돌메기 사이에 투명한 막으로 막았습니다. 곤돌메기가 헤엄치고 다니다가 허기가 져서 어느 때처럼 먹이를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무엇인가에 부닥쳐서 먹이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먹이가 눈앞에 있는데 먹을 수가 없었지요. 한참을 애써 보지만 끝끝내 먹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이 칸막이를 치웠습니다. 허기진 곤돌메기가 당연히 먹이를 향해 달려가야 할 텐데 가만히 굶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번번이 실패한 경험으로 눈앞의 먹이를 포기하고 굶어 죽어간 것이지요.

오늘 우리도 번번이 실패하는 경험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꿈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지만 수도 없이 좌절하면서 그 꿈을 점점 잊어버리고 맙니다. 특히 스스로 간직하고 있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나의 꿈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물론, 남의 꿈까지도 사라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는 여인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사람을 고친다는 것,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치신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회당장이 군중을 향해서 외치지요.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이 회당장의 모습이 앞선 곤돌메기의 아둔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먹이가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리었던 칸막이를 떠올리면서 먹이를 먹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을 구원해주실 주님이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이라는 칸막이를 떠올리면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도 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서 위선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율법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을 어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서 하느님의 손길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습이 곤돌메기와 같은 회당장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해 봅니다. 인간적인 판단 기준만을 내세워서 하느님의 그 큰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의 기준이 커다란 칸막이가 되어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내 앞에 있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상징하는 그 큰 칸막이를 치워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언제나 내 앞에 계셨던 주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 상징되는 내 마음의 칸막이를 치웁시다.
 
 



어떤 사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부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신부님, 제가 정말로 이래서는 안 되는데, 사업 문제로 하도 답답해서 어제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제 손을 보더니만, 저의 운명이 엉망이라서 그렇다고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이렇게 점괘가 나오니까 더 답답한 마음이 생기고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 길래 왜 점을 보십니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어야지요.” 그리고는 손을 한 번 펴보라고 말씀하세요.

“아마 손바닥에서 이것을 감정선, 이것을 운명선, 이것을 생명선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그럼 손을 꼭 쥐어보세요.”

이 형제님은 손을 꼭 쥐고는 신부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형제님께 말씀드렸던 감정선과 운명선과 생명선은 어디에 있지요?”
 
 
“어디 있긴요? 바로 제 손 안에 있지요.”
 
“맞습니다. 바로 형제님은 형제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입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하지요. 그것은 우리들의 삶을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내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합니까?”
 
 
나의 의지에 따라 달려있는 내 삶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억울합니까? 더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유의지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우리들과 함께함으로 인해서 이 고통과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님과 함께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헛되고 무의미한 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본인의 잘못도 있지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람들도 잘못도 큽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이들의 삶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회당장과 같은 사람이지요.
 
 
회당장은 예수님께 치유를 청하러 온 군중들에게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요.
 
안식일에는 일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치료 받으러 와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식일 법은 단순히 일하지 않는 법이 아니지요. 엿새 동안의 일로 힘든 육체를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사랑의 치유행위는 안식일법보다 우선이 되는 것입니다.
 
회당장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생각하지 않는 그래서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사랑’이라는 주님의 법보다는 다른 외적인 것을 더욱 더 중요시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또 한명의 회당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원칙을 따르는 멋진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원칙을 잊지 마세요.
 
 
 
 
 
Yuhki Kuramoto -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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