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잘못이 아니라 고통을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5 조회수472 추천수4 반대(0) 신고

 

 

 

잘못이 아니라 고통을  


        “마침 그 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여인의 병을 치유하십니다.
        당연히 회당장은 분개하고 사람들에게
        1주일에 안식일이 아닌 날도 많으니

        다른 날 치유 받으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회당장은 나무랄 데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용한 사람이고,
        그의 말대로 굳이 안식일을 어겨가면서

        고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옳고 대단히 합리적으로 보이는 그 안에
        예수님께서 문제로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법은 보는데 사람은 보지 못하고,
        잘못은 보는데 고통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안에

        사랑과 자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자비하다고 하면
        즉시 그리고 보통 잔혹한 살인자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심성이 그렇게 잔혹하지 않아도
        어떤 이유로건 자비가 없으면 무자비한 것입니다.
        법 때문에 자비가 없어도 무자비한 것이고,
        합리성 때문에 자비가 없어도 무자비한 것이며,
        정의 때문에 자비가 없어도 무자비한 것이고,
        심지어 하느님 때문에

        자비가 없어도 무자비한 것입니다.

        연초에 한 번 말씀드렸듯이 저는 올 해의 경구를
        “잘못이 아닌 고통을!”으로 삼았습니다.
        올 한 해 이웃의 잘못을 보기 보다는

        고통을 더 보겠다는 뜻이지요.
        저는 자주 옳고 그름을

        심하게 가르는 시비심(是非心) 때문에
        이웃의 고통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지나칩니다.
        그것은 회당장이 열여덟 해나 앓은
        여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비의 눈으로 보면

        그 열여덟 해의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고통이 그렇게 큰데도 회당장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은 보지 못하고 큰 것은 잘 보는데
        여인에게는 그렇게 큰 열여덟 해의 고통이
        회당장에게는 너무도 작은 것이기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고통은 크고 남이 고통은 작다고 해도
        열여덟 해나 앓아온

        여인의 고통을 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하지요.

        그런데 어떤 때

        우리가 이렇게 너무합니다.
        오늘, 너무한 저를 성찰합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은형제회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