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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휴식 같은 친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6 조회수1,085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30 주간 화요일 - 휴식 같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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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탈옥하여 2년 동안 9억 8000여만 원을 훔쳤고 헬기와 군대까지 동원하여 그를 잡으려했지만 눈앞에서 13번이나 유유히 사라졌던 탈옥수이자 무기징역수 신창원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 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줬으면 여기까지 안 왔을 거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새끼야. 돈도 안 가져왔으면서 뭐 하러 학교와. 빨리 꺼져.’ 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사람은 본래 빈손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누구에게서 무엇을 받지 못하면 어떤 누구에게도 무엇 하나 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창원과 같은 사람은 미움을 받았기 때문에 미움밖에 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녀가 결혼하려고 한다면 상대방 집의 무엇부터 물어봅니까? 양친이 모두 살아 계시냐고 묻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 본 이들이 자신의 자녀도 잘 사랑해 줄 것임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범죄자들의 많은 경우가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신창원도 엄마가 자신이 8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못 받은 데다 학교에서도 칭찬 한 번 못 받아보고 자랐으니 그에게서 사랑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나라는 마치 겨자씨와 같아서 처음엔 아주 작아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나중엔 새들까지 와서 쉴 수 있을 만큼 커진다는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즉, 하늘나라의 행복이 내 마음 안에 아주 작은 씨앗으로 뿌려지지만 그것이 자라나면 다른 사람들이 내 행복한 마음의 영향을 받아 나에게로 와서 휴식을 취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정말 힘들어하고 짜증 잘 내는 사람보다는 행복하고 기쁜 사람에게 더 다가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누구나가 좀 쉬고 위로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누룩 역시 밀가루 반죽에 섞으면 나중에 온통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이 비유 역시 하느님나라나 행복이나 사랑은 부풀어 올라 자꾸 커지는 성질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당신 삼위일체 안에서의 사랑과 행복으로 충분하시지만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나라는 나만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요즘엔 신창원씨도 이해인 수녀님과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며 마음의 평안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이해인 수녀님께 보낸 편지를 한 번 읽어봅시다.

 

“이모님께

새장 같은 공간, 그리고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

나약한 의지를 어찌할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절망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바삐 날아온 사랑이 있었습니다. 꼬물꼬물 길게 늘어진 날필을 해독할 수 없어 암호를 풀 듯 30분을 매달려야만 했지요. 35년이 흘러 지금은 희미해져 버린 어머니의 향기 그리고 요람 같은 포근한 가슴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홍역을 앓듯 마음의 몸살을 앓을 때면 마치 곁에서 지켜보고 계셨던 것처럼 한 걸음에 달려오셨지요.

“사랑해요, 창원이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알죠? 우리 모두 기도하며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내요.”

이모님은 때론 어머니처럼, 때론 친구처럼 그렇게 그렇게 저의 공간을 방문하여 손을 내미셨습니다.

마을 중앙에서 두 팔 벌린 당산나무 같은 이모님.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막아 삶에 지친 영혼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수호수.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심정으로 내리사랑만 베푸시다 지금은 알을 품은 펭귄의 헤진 가슴으로 홀로 추운 겨울을 맞고 계시는군요.

처음 이모님의 병상소식을 접했을 땐 눈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울지 않아요. 걱정도 하지 않을 겁니다. 해빙이 되고 들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밝게 웃으시며 풍성한 품으로 절 부르실 걸 알기에 조용히 조용히 봄을 기다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2008년 9월 푸른 솔밭에서.”

 

신창원씨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나오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해인 수녀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 주고 그래서 미움만 지니고 살았던 사람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이해인 수녀님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나라입니다. 사랑도 행복도 내 안에 작은 씨앗으로 시작하여 이웃까지 번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의 씨앗을 먼저 키우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습니까? 가진 것을 줄 수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그 힘으로,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휴식 같은 친구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요?

 

 

혼인, 하늘나라의 가장 완전한 비유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비유로만 설명해 주십니다. 비유로만 설명하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어도 우리가 알아들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직접 이야기 해 주었더니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예수님을 다 떠나갔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 정글에서만 살아온 조아족 원주민들에게 서울과 같은 도시에 대해 설명해 준다고 합시다. 그들이 본 집은 나뭇가지와 풀로 엮어서 만든 집이 전부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여러분들이 나무와 풀로 지어놓은 집들보다 훨씬 큰 집들이 엄청나가 많은 큰 동네’ 정도로밖에 설명이 안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도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 설명을 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밭에 묻힌 보물이나 가장 귀한 진주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잃더라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 오늘 복음에서처럼 겨자씨나 누룩처럼 점점 커지는 성격이 있다는 것, 어부가 고기를 잡아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분리하듯이 혹은 밀과 가라지를 분리하듯이 좋지 못한 본성을 지닌 영혼들은 그 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등으로 설명을 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비유 중, 가장 완전한 비유는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혼인의 비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남편과 아내가 혼인하여 사랑하는 관계가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다고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먼저 말씀하셨다면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인 것처럼, 당신이 신랑이고 당신의 성체와 성혈로 지금의 나와 혼인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진리는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한 몸을 이루는 사랑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부가 사랑할 때 행복한 것처럼 그리스도와의 혼인도 바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 행복이 바로 하느님나라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이 아버지께 그랬던 것처럼, 또 사람의 몸으로 비유되는 아내가 머리인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듯이, 나도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분이 당신의 피와 물을 통해 나를 정화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물은 아래로 흐르지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 성령의 은총 없이는 나와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이 혼인의 관계를 가장 완전하게 실현하신 분이 마리아이십니다. 마리아는 당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하시며 모든 것에 있어서 순종하십니다. 그렇기에 성령님을 받으시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십니다. 진정으로 한 몸 안에 두 심장이 뛰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마니피캇을 노래합니다. 이 행복이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반감을 많이 가진 어떤 사람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라 하니까, 그러면 자신은 그런 하느님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아이들이 우리 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보고 그 관계가 바로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부부의 혼인은 그래서 ‘성사’입니다. 거룩한 사랑으로 자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마치, 성체가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듯, 우리 부부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델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늘 독서처럼, 남편은 아내를 목숨을 다 해 사랑해야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는 겸손함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 예수 내 작은 기쁨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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