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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 10.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27 조회수344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0.27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에페6,1-9 루카13,22-30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인생은 좁은 문들의 연속입니다.

태어나는 것도 좁은 문이지만 태어나자마자 좁은 문들의 연속입니다.

이런저런 과외 공부로 여유 없이 초중고의 좁은 문들을 통과하면

수능고사의 좁은 문, 대학을 마쳐도

취직 시험의 좁은 문, 승진의 좁은 문,

결혼의 좁은 문, 가정생활의 좁은 문,

직장생활의 좁은 문, 수도생활의 좁은 문 등

살아 갈수록 좁아지는 문들에 지쳐

희망을 잃고 절망에 목숨을 끊는 이들도 많습니다.

누구나 통과해야 하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좁은 문들입니다.

세상에 넓고 편한 문들은 어디도 없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한 결 같이 노력하는 자가 좁은 문을 통과합니다.

등학교 교장님을 지내다가 얼마 전 작고한

제 예전 친구 분의 묘비명을 잊지 못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전

마지막 근무하던 학교에 세울 묘비명의 문구를 부탁하자

‘한결같이’란 문구를 청했다 합니다.

한결같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겸손히 노력할 때

좁은 문 통과도 수월해 집니다.

좁은 문은 그대로 인데, 아니 점점 작아지는 좁은 문인데

나는 그대로 라면 어떻게 작아지는 좁은 문들을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겸손으로 갈수록 작아져야 인생의 좁은 문들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겸손으로 작아지는 삶,

바로 이게 진정한 의미의 영적성숙의 삶입니다.

 

어제 병원진료 시

친절하고 지혜로운 의사선생님의 유쾌했던 담화 분위기도 잊지 못합니다.

예전의 건강을 생각하며 완전한 치료는 없겠는가 물었을 때의

웃으며 하신 답변입니다.

 

“거꾸로 나이 먹으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제부터 좋아지기보다는

  잘 관리하여 기능 약화를 더디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답변에 참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즉시 영고성쇠(榮枯盛衰)한 말도 떠올랐습니다.

계절로 보면 내 나이는 어디 쯤 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게 자연의 순리요 하느님의 뜻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한결같이 겸손히 감사하며 살아갈 때,

살아 갈수록 좁은 문이 아니라 내적으로 넓은 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때문입니다.

섬김과 사랑의 실천으로 표현되는 겸손의 수행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 좁은 문 통과가 좌절된 이와

주님과의 주고받는 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주님,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문을 두드리지만 주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자 과거에 주님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장황히 나열합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대답했지만 주님은 답변은 똑같습니다.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나는 모른다.’ 란 말씀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어도

주님으로부터 ‘나는 모른다.’ 라는 말씀을 들으면 완전히 헛된 노고입니다.

주님의 뜻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제 좋을 대로 제 멋대로 넓은 문의 삶을 산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정말 나는 주님을 알고 주님도 나를 아는 지,

주님의 코드에 맞춰 산 삶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살아갈수록 주님과 깊어지는 앎의 관계였는지,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잔치가 하느님 나라 잔칫상의 예표와도 같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다가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해

주님의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좁은 문중에서도 좁은 문은 공동생활의 좁은 문입니다.

아무리 외적 환경이 좋아도

공동체내에서 주님과의 관계, 인간관계가 어려우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공동생활의 좁은 문을 잘 통과하지 않고는 구원도 없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바로 겸손과 사랑, 인내와 겸손으로

공동생활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부 베네딕도 역시

형제들의 약점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 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1독서에서

공동생활의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지침을 주십니다.

 

“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가정공동체의 좁은 문 통과를 위해

부모와 자녀는 주님 안에서 그 역할에 충실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인과 종들 역시

주님 안에서 그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사도 바오로입니다.

 

다음 말씀은 당대의 종뿐 아니라

오늘날 공동체 생활을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기쁘게 섬기십시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종’으로 겸손히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할 때,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이웃을 섬길 때

공동체 생활의 좁은 문을 너끈히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공동체 생활의 좁은 문 통과에

하느님을 찾는 일인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일인 기도가 잘 되면

함께 사는 일 역시 수월해지며

개인의 소임상의 일이나 삶도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에게 피할 수 없는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부단히 겸손으로 작아져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 갈 때,

오히려 좁은 문은 내적으로 하느님께 이르는 넓은 문이 됩니다.

다음 사부 베네딕도 말씀 우리 수도승들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좁게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마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니,

  주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아멘’(RB 머리48-50).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과의 깊어지는 관계가

우리 인생의 좁은 문을

내적으로 넓은 문, 감미로운 문으로 바꾸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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