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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31일 야곱의 우물-루카19,1-1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31 조회수362 추천수6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1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가 오늘 걷는 길을 인도하시고,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독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루카 19, 1) 이제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습니다. 갈릴래아에서 예리코까지 오는 길에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8, 38) 하며 많은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이 예수님을 불렀고, 그 옷자락을 만졌고, 치유를 청했고, 그래서 자비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날 사람은 그들과 어딘가 다릅니다. 그는 예수님을 외쳐 부르지 않습니다. 그 역시 예수님을 뵙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도 따뜻한 눈길이 애타게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키가 작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눈에 보이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부와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동족인 유다인들에게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세관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들보다 앞서 달려가, 사람들이 보기 전에 얼른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몸을 숨겼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군중도 예수님도 알 수 없도록 말입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과 군중이 모두 나무 곁을 지나갈 때까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을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 안에는 갈망이 있었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향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그저 멀리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하루 종일 병자들을 고쳐주시느라고 식사할 시간도 없으셨다고, 사람들이 그분을 사방에서 밀치며 따라다녔기에 누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는지 말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공생활 마지막 무렵, 이제는 할 일을 찾아 나서지 않으셔도 그분께 도움을 간청하는 이들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굳이 당신을 부르지도 않은 자캐오에게 눈길을 주십니다. 그 자리에 이르러 그를 쳐다보시며 말을 거십니다.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강한 문장입니다. 여기에서 ‘ … 해야 하겠다.’ 라는 말은 그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내가 너의 집에 머물러야만 한다.’ 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의무 또는 필연성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하셔야 한다는 문맥에서 또는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되어야 한다는 맥락에서 여러 번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자캐오의 집에 머무셔야만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고 예수님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마지막 절에서는 다른 식으로 같은 내용을 다시 말해 줍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잃은 이들, 곧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양, 잃었던 아들 (루카복음 15장). 자캐오 역시 그 ‘잃은 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특히 바리사이와 율법학자 같은 이들은 (15, 2) ‘잃은 이들’ 은 이미 멸망한 이들이고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멀리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그들의 집에 가지 않습니다. 더러운 것을 멀리하듯 그들을 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의 집에 ‘머물러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바로 그들, 그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것이기에 그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찾아 나섭니다. 당신께서 오신 목적을 위하여, 당신께 찾아오는 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소리 없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캐오까지도 모른 척하지 않으시고 거두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다른 이들이 예수님의 처사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도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이라고 투덜거려도 (19, 7)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5절), 당신께서 이루셔야 할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의 험담이나 불평은 당신께서 받으실 몫으로 감수하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오직 한 사람을 “잃었다가 되찾는” 것입니다. (15, 32)

성찰
‘머물러야 하겠다.’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임을 안다면, 행할 수 있는 굳센 마음을 청합니다. 소리쳐 나를 부르지 않아도, 오히려 뒤에서 다른 말들을 한다 해도,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는 항구함을 청합니다.

기도
주님은 너그러우시고 자비하신 분,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신 분.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신 분, 그 자비 당신의 모든 조물 위에 미치네. (시편 145, 8 – 9)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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