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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신을 옭매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길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0-31 조회수358 추천수4 반대(0) 신고
 
 
 
 

 

자신을 옭매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길 - 윤경재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1-10)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자케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가 당시에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해 봅니다. 우선 본문 내용에서 알 수 있는 몇 가지 내용을 추려 봅니다. 

그는 세관장으로 상당히 재산을 긁어모았을 겁니다. 세관장은 일반 세리와 그 격이 아주 다릅니다. 세관장은 자신의 재산으로 미리 로마 당국에 세금을 대납한 뒤에 자신이 납부한 돈의 몇 배를 담당 지역 주민에게서 강제로 세금을 매겨 거두어들인 자입니다. 목돈으로 낸 것을 푼돈을 거두려면 손실도 예상해야 하고 당국과 군인들에게 바친 뒷돈도 보태야 했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셈이 아주 빠른 자였습니다. 자신의 잇속을 챙겨야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철저하게 몸에 배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신체적으로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남자치고 뭇사람들의 어깨 넘어 예수님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 키가 작았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는 뜻입니다. 혹시 난쟁이 자캐오라 놀림을 받았을는지도 모릅니다. 남자에게 키가 작다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큰 결점이 됩니다. 남에게 놀림을 받을 정도로 약점이 컸다면 그의 성격 형성에 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점을 감추거나 보상하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점이 한 사람의 가치관에 변형을 주게 됩니다. 자캐오는 키가 작다는 약점을 보상하기 위해 남들을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았을 것이고 그래서 더 악랄하게 돈에 집착했으며 세관장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입니다. 한 가지 얻는 것이 있으면 한 가지 잃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자캐오는 세관장으로 부와 권력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동족에게 몹쓸 죽일 놈으로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로마 권력층이나 군인들도 그를 제대로 대접했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가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을 알게 되고 인생의 가치를 되새겨 볼 나이가 되자 그는 인생에서 돈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과 소통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는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지 뼈저리게 느낀 것입니다. 키 작다는 놀림과 왕따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건만, 오히려 더 가혹한 소외의 쓴맛만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는 예수와 같은 인류 최고의 성자와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예수라는 존재는 그에게 여러 가지 단상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소문으로 듣기에도 예수라는 인물이 무엇인가 남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병자들을 고쳐 주었고, 마귀 들린 사람들을 구해주었습니다. 창녀와 같은 죄인들도 용서해 주었고 심지어 세리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예수가 자신에게도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멀리서나마 바라보러 자신을 벌레 보듯 하는 군중 속에 과감히 섞일 수 있었습니다. 그로서는 위해를 받을 위험을 감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역시 그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군중이 서로 밀치고 미는 그런 혼란 속에서는 자캐오의 부와 권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군중은 키 작은 그를 앞자리에 세워 양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족은 그를 오물이라도 되듯 멀리 밀쳐버렸습니다. 

자캐오가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없었다기보다 그가 나쁜 놈이라는 오명이 그의 길을 막은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자캐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일행을 앞질러 나가 돌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본문의 저자는 자캐오의 이런 행동이 예수님의 눈길을 끈 것처럼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행동보다 먼저 그의 마음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캐오의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자캐오의 돌발적인 행동은 자신이 고통 중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떤 돌파구를 보여 줍니다. 

일전에 최윤희라는 이가 외딴 모텔에서 남편과 동반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이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더욱이 그녀는 행복전도사라는 유명세를 타고 있어서 더 그랬습니다. 저도 이 소식을 인터넷에서 보고 그 사연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루푸스(홍반성낭창)라는 못된 병마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알고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루푸스는 자신의 몸을 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 면역 질환’입니다. 멀쩡한 정상 세포를 병으로 인식하고 덤벼들어 염증을 일으킵니다. 몸 안의 모든 장기와 세포가 다 적이 되어 싸우는 형국입니다. 어찌 보면 제 몸을 사랑하지 못하게 훼방하는 몹쓸 병인 것입니다. 자살이란 결국 자신과 처지를 증오해서 생기는 불상사입니다.

그녀의 자살 소식에 백 가지 천 가지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공포 속에서 무력하게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에 무한한 절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TV 화면에서 웃으며 행복을 전했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배신감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자캐오를 만나며 혹시 자캐오가 겪었던 고통이 그녀만큼은 아닐지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그의 행동이 어떤 해결책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이 겪는 고통은 그 경중이 다 다른 것 같아도 사실 그 행동양식은 일맥상통합니다. 언제나 제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입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은 자신을 더 고립시키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의 덫에 갇혀 버립니다. 완전히 갇힐 때까지 잘 깨닫지도 못하고, 갇히고 나면 스스로 빠져나오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모래 늪처럼 한번 허우적대면 자꾸만 더 깊게 빠져듭니다. 자신을 고립시켜 제 몸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외부에서 던져주는 끈을 부여잡고 그 도움으로 벗어나오는 방법뿐입니다. 

자캐오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서 벗어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군중이 핍박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 방법을 생각해내었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아마 두 번째 방법이 실패했더라도 그는 또 다른 수단을 취했을 겁니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나눔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동안 진리인 줄 오해하고 잘못 모아 놓았던 부귀를 과감히 벗어 던졌습니다. 법이 정한 것보다 더 크게 내놓았습니다.

자캐오의 행동은 우리에게 병마와 소외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여 줍니다. 자신도 소외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솔직히 드러냈습니다. 또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최윤희 씨가 앓은 루푸스를 다른 양태로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훼방하는 악마의 유혹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녀의 엄청난 처신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다는 소회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를 읽으며 구원의 끈을 바라는 자캐오의 행동이 더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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