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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옥 영혼도 우리의 이웃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02 조회수1,144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위령의 날 - 연옥 영혼도 우리의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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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어떤 병원 영안실에서 신자들과 함께 연도를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개신교 찬송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분들께 물어보니 개신교인들도 장례가 나면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하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개신교는 연옥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교리에 의하면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심판을 받고 그 심판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것은 목사님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래도 직접 와서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는 신도들이 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연옥이 없다고 가르쳐도 사람들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지는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올바른 도리’라는 양심의 소리는 잠재울 수 없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부잣집 친구 생일잔치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신을 벗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양말에 구멍이 나서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창피해서 계속 다른 발로 그 발을 밟고 있었습니다. 좋은 음식과 놀이들은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만약 그 집 어딘가에 공간이 있어 양말을 기워 신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잠깐 잔치에서 빠져있더라도 그 곳에서 양말을 고쳐 신고 다시 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완전한 성인들만 있는 곳인데 혼자만 어린 아기라면 본인이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연옥은 벌을 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하느님나라에 들어갔을 때 충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기에 은총의 공간인 것입니다.

 

하느님나라는 깨끗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의하면 하느님 나라에 있는 의인들이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빨아 희게 한” 사람들입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도 세례자 요한보다는 크다고 하십니다. 즉, 완전히 자신을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떠한 흠도 티도 하느님나라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이렇게 온전히 깨끗해져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부족한 상태로 죽음을 맞기 때문에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씻는 연옥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은총입니다. 연옥이 없다면 누구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숨은 일을 모두 드러내시는 주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베오 12,41-45)

 

우리가 고해성사로 죄가 용서받지만 우리 양심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도 무언가 보속을 하고자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죄의 보속도 하나도 하지 않고 죄를 용서받아 천국에 갔다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물병을 깨서 엄마가 힘들게 바닥을 닦고 있다면 아이도 무언가 도와주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자기가 저질러놓은 일에 자기도 책임을 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연옥이란 바로, 사제의 보속을 하는 것처럼, 우선은 나의 양심의 평화를 위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자비입니다.

 

그러나 그 곳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을 한데 합친 것보다 연옥의 아주 미소한 괴로움이 더 혹독합니다.” (성 치릴로)

“연옥에서 일순간 받는 고통은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고통보다 더 무섭습니다.” “현세에서 받는 모든 괴로움보다 연옥불은 혹독합니다.” (성 아우구스띠노)

 

왜 죽은 뒤에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하냐면 죽은 이후에는 ‘믿음’의 공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선 믿음의 불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단련하지만 죽은 뒤엔 더 이상 믿을 필요가 없기에 그 고통이 더 가중되는 것입니다.

 

로마엔 연옥 영혼들에게 봉헌 된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안엔 연옥 영혼에 관한 많은 기적들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화재가 나서 새겨진 연옥에 있는 한 사제의 얼굴, 옷과 책상, 책 등에 손 모양으로 타 들어간 것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성당을 지으신 분은 독일 신부님입니다. 그 분이 한 노인 신부님과 본당에서 함께 살았는데, 노인 신부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며칠 뒤 꿈에 나타나 왜 당신을 위해 미사를 드리지 않느냐고 하며 미사를 계속 드려달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신부님은 자신의 손에 꿈에서 미사예물로 받은 돈이 쥐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지폐는 당시에 사용되지 않던 수십 년 전 오래된 화폐였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로마에 와서 연옥영혼을 위해 성당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로마에 유일하게 고딕양식의 성당이 하나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공로는 믿음의 공로까지 합쳐지기 때문에 우리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면 그들은 수백 배의 공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또 이 세상에서 기도해주는 이들을 위해 주님 옆에서 얼마나 많이 청원해 주겠습니까?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늘에 좋은 친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미사가 가장 큰 기도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식사 후 기도만 잘 해도 그들에게 수많은 위로를 줄 것이고 우리도 그 사랑의 보답을 크게 입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연옥영혼보다 많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먼저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우리의 기도가 올라가야 할 곳은 연옥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조상 중에, 혹은 잊혀진 영혼이 연옥에서 그렇게 호된 보속을 치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웃사랑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 이 시간 주님께 기도합니다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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