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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07 조회수1,049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32 주간 월요일 - 믿음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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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유리겔라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문지르면 숟가락이 마치 엿가락처럼 녹아서 휘어졌고 고장 난 시계를 움직이게 하고 손가락 위에서 씨앗을 문질러 싹이 트게 하는 것들이 텔레비전에 방영되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자신이 한 것을 우리들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각자 자기 집에 있는 고장 난 시계들을 가지고 와서 자신과 함께 ‘움직여!’ 하면 고장 난 시계들이 움직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집에 있는 배터리가 다 되었거나 고장 난 손목시계 등을 가지고 와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손 안에 시계를 놓고 굳은 믿음으로 ‘움직여!’를 여러 번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몇 년 동안 죽어있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른 것들도 시도 해 보았더니 어떤 것들은 안 되었지만 어떤 것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도 많은 시계들을 고쳤고 어떤 친구는 숟가락이 정말 휘었다고 하는 친구가 있었고 어떤 친구는 자신의 손에서 씨앗이 싹이 텄다고 정말 씨앗을 가져 와 시범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질러도 씨앗은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다시 움직이지 않는 시계를 움직이게 해 보려 했지만 그 이후로는 그런 반응이 일어난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유리겔라라고 하는 사람이 정말 신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인지 혹은 사기꾼인지 모릅니다. 다만 그는 우리를 믿게 하였고 또 우리가 믿는 대로 되었다는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우리들의 작은 믿음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나의 믿음을 방해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성이었습니다. 이성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라고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순수하게 믿을 줄 알았지만 크면서 배워온 것들이 믿음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이성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합니다. 믿음이 이성을 이겨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증가시켜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이 말씀은 그들이 믿음의 증가를 청하지만 그들에겐 안 되는 일을 되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믿음조차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성이 ‘그런 일은 불가능해!’하며 믿음을 이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믿음의 스승인 그리스도를 보며 불가능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 곁에 믿음의 스승으로서 함께 계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누구인지는 모두 확신을 합니다. 어렸을 때 야단맞을 때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에 ‘정말 주워온 건 아닌가?’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이내 그런 의심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생각해보면 정말 부모가 아닐 수 없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가끔은 ‘내가 정말 주워온 아이인가?’라고 생각했다가 어른이 되면서는 부모님이 나의 참 부모님임을 의심 없이 믿고 알게 된 이유는 바로 매일매일 체험되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묵상하고 기억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보지 않은 것을 믿기 위해서는 묵상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묵상했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묵상해야 그 말씀이 우리 믿음을 증가시켜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 적은 없지만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신 모든 행적을 매일매일 묵상한다면 덩달아 믿음도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묵상도 자기 맘대로 하고 해석도 자기 맘대로 내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참 부모님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는 것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해 주신 일을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그것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의 증언도 크게 작용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묵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우리 곁에 믿음이 큰 교회의 사람을 친구로 두고 그의 믿음을 본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도 믿음으로는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믿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거든 그를 스승으로 삼고 겸손 되게 믿음을 배우려고 노력해봅시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

 

중학교 때, 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조금 이상한 쪽으로 빠졌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불량학생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저도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짜릿한 경험담들을 들려줄 때는 저도 호기심에 따라해 보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이미 술도 마셔보고 담배도 펴 보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위험한 수준까지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욱더 안 좋은 쪽으로 빠졌고 나중엔 정학을 밥 먹듯이 맞았습니다. 어쨌건 그들은 그들끼리 어울렸고 알고 보니 그들을 그 쪽으로 끌어들인 또 다른 이가 있었습니다. 나쁜 짓이라도 함께 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마음이 놓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커가면서 더욱 자신들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자신들조차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목에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혼자는 죄를 짓더라도 남은 죄짓게 하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나의 모든 죄들이 남에게 직접적으로는 피해를 주지 않는 죄들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죄인인 내 존재만으로 남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와는 죄를 짓고 곧바로 아담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자신의 죄에 끼워 들입니다. 하와는 자신만 죄인이 아니고 또 다른 동료를 얻어서 위로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을 죄짓게 하였으니 더 죄가 커진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나은 아들입니다. 아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죄도 짓지 않고 태어났는데 부모가 죄인이라 자신도 죄인이 됩니다. 원죄를 물려받았다는 뜻이고 그렇게 모든 인류가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안고 태어났던 카인은 동생을 시기하여 그를 죽입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카인이 그렇게 안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았지만 자신들의 죄를 이어받는 자녀를 낳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결손가정에서 자란 것을 보면 나의 행동들이 나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이혼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같이 생각하겠지만, 자신이 받기를 거부한 고통들을 가족들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가장 미워했던 사람이 결혼해서 자신도 그렇게 폭력을 휘둘러 이혼을 당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와 정을 통해 생긴 아기도 그랬습니다. 아기가 죄를 지인 것도 아닌데 부모의 죄 때문에 살지도 못하고 죽어버립니다. 부모의 죄 때문에 아기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자연스럽게 죄가 전해지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만약 자신의 양심을 편하게 하기 위해 하와처럼 일부러 남을 죄짓게 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죄입니다.

제가 어떤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할 때, 누군가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가서 그 사람을 보니 이미 가지고 온 선입관 때문에 처음부터 안 좋은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때 들었던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험담 때문에 저도 덩달아 상대를 나쁘게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은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내가 흠잡을 수 없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나도 어쩔 수 없이 남을 죄짓게 하며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 완전해지는 것이 첫째가 되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도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 나의 하느님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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