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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현실과 피안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본질
작성자심경섭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08 조회수424 추천수2 반대(0) 신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선과 악의 투쟁의 장소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선과 악의 투쟁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의 선은 악의 완강함 앞에 무너짐을 종종 경험합니다.  현실의 한계 앞에서 우리는 절망이냐 희망이냐를 놓고 갈등합니다. 그 때 신과 신의 선함을 체험한 우리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선의 완성을 위해 종교적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종교만이 참된 종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선에 대한 존중과 열망이 참된 종교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잘 정리해 놓은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글을 올려봅니다.
 
 "독실한 신앙심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는 그들이 현실을 떠나 피안의 세계로 초월하는 까닭이 이기적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모두 충족되지 않는 개인적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 피안의 세계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자기보존이라는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늘나라에서의 영생을 바라고, 이 땅에서 겪은 불행을 보상받기 위해 하늘나라에서의 행복을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땅 위의 적들에 대한 우리의 복수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천당 밑에 지옥을 만들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우리의 탐욕스런 환상을 현실화시켜줄 수 있는 보증인으로서 절대자 또는 전지전능한 신을 상정합니다. 그리하여 이런 종류의 신앙에 있어서 신이란 우리의 모든 이기적 욕망의 최종적 지향점인 셈입니다. 우리가 숭배하는 신은 우리 자신의 욕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을 숭배할 때,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숭배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신앙이 아무리 순수하고 거룩한 외관을 띠고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신일 뿐 참된 종교일 수 없습니다. 그런 종류의 신앙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신성하게 만드는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종교는 현실의 욕망을 피안의 세계에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성스럽게 하기는커녕 정반대로 모든 성스러운 것들을 현실의 논리 속에서 더럽힐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참된 종교는 우리가 욕망의 다리를 건너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선(신=선자체)을 향한 열망에 이끌려 현실을 초월할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속에 깃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선 때문에 현실에 절망할 때, 현실에 대한 절망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뛰어넘어 피안의 세계를 지향하게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피안의 세계라 하더라도 이때 우리가 동경하는 피안의 세계는 욕망이 충족된 세계가 아니라 보편적 선이 실현된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숭배하는 신은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선한 의지이며 완전한 선의 주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선에 대한 열망에 이끌려 신을 갈망하게 되며, 거꾸로 우리가 신을 숭배하는 것은 곧 선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마지막에는 신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자연적 세계와 그 속에 있는 모든 유한한 존재자들은 선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선한 영혼은 유한한 세계를 뛰어넘어 존재의 절대적 완성을 추구하기에 이르는데, 이처럼 선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우리를 현실에 절망하게 할 때, 그 절망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신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절대자일 수 있는 것입니다."
 
 
ps. 내가 숭배하는 대상은 나의 욕망입니까, 선 자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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