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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09 조회수551 추천수6 반대(0) 신고

 

죽음과 부활에 관한 논쟁으로 7형제와 결혼한 여인이 등장하게 된다.

일곱 다 한 여자를 부인으로 두었으니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

문에

예수님은 결혼이란 제도는 현세에서만 필요한 것이라고 일축해 버리신다.

 

그나 저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었다는 사실

을 생각해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하느님도 인간에게 죽음이 없길 바라신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죽음이 인간 세상에 들어온 것은 원죄 때문이라

고 한다(로마5:12이하).

 

하느님은 살아있는 자들의 하느님이란 예수님의 설명은,

우리가 죽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 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영원히 죽지 않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면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아무래도 영원히 죽지 않으시는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 가능해

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이 와도 두렵지 않을 수 있으려면 하느님과 함께 사는 법

을 알면 될 것 같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누구든지 예외 없이 결국엔 저 혼자 남겨지게 된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가고 저 혼자 남게 된다.

그것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르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병중에 약간씩

 경험하게 된다.

 

어린 시절 심한 열병에 걸려서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누워 있은 적이 있다.

여러분도 한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상당히 기분좋은 일인 것 같지만

몹시 아플 땐 그런 것이 조금도 기쁘거나 위로가 되지 않는다.

방바닥이 화끈 화끈 달아올라도 온 몸이 추워서 덜덜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되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그럴 때 누군가 옆에 있으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지지난 주말, 충북 단양에서 전국 복지관 관장 세미나가 있어서 들렀다가

다음날 그동안 귀하게 알고 지냈던 보건복지부 공무원 한 분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그분의 일정이 바빠서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서울역에서 만났다.

참으로 오랜만(2년)에 만났지만 나 또한 곧바로 구미로 내려와야 했기에

서울역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적당한 식당을 찾아 이동하는 중 길거리에 쓰러진 노숙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울역 근처에는 그런 분이 많기에 무심코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이 분은 잠깐 동안 쳐다보시더니 그 옆에 깨어져 있는 소주병과 유리

조각을 손으로 치우고는

그분이 덮고 있는 윗도리를 더 단단하게 깊이 덮어주었다.

순간 그냥 지나치려 했던 내가 부끄러웠고 동시에

그렇게 마음으로 동정해주는 그분의 동작이 일시적인 행동이 아닐 것이란 생

각이 들어 마음이 훈훈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부지불식간에 습관이 되어서 나타나는 법이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에,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은,

사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 자신을 돕는 일이란 사실을 다시금 깨달

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위로는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참된 위로는 하

느님께로부터 주어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 아주 철저하게 홀로 된 순간에 하느님이 계심을 느끼지 못

하면 얼마나 외로울까?!

그런 곳, 즉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그런 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

가!

 

때문에 그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서부터 하느님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울역 근처에서 복지부 공무원이 보여준,

그런 몸에 벤 친절이나 선행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서부터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빗나간 질문을 던졌다.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물을 것이 아니라,

“그 때마다, 결혼한 남자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때마다,

그 여인이 남자 곁을 지켜주었을까요?” 혹은,

“그 때마다 하느님도 그 사람들 곁을 지켜주었을까요?” 하고 물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란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길 바라신다는 뜻이고, 그만큼 사람을 사랑하신

다는 뜻이다.

 

요즘 연속극마다 “정의”가 화두라고 한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대물이란 연속극도,

지난 주에 종영된 성균관 스캔들이나 그 이전에 끝난 동이도

그 속에는 바르게, 정의롭게 사는 것이 중요한 가치임을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얼마나 이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면 그런 연속극이 인기를 누리겠는가 싶고,

한편으론 하느님이 계시기에 인간이 그런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

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 살아 있어야 함을,

육체적인 숨이 붙어어야 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모습으로 살아있어야 함을,

다실 말해 모든 사람은 모름지기 깨어있어야 함을,

그리고 바르게 살고 있어야 함을,

그러기 위해서는 늘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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