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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에이지 신봉자의 '혼합 공부' [정신 확장, 의식 상태]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0 조회수333 추천수1 반대(0) 신고
 
뉴 에이지에서 영성이라는 말은 전체와 결합된 (이분법이 없는 단일론, 전체론적 합치 혼합)으로 충만한 의식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뉴 에이지 신비주의''는 사랑이 충만한 초월적인 하느님을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함으로써 생기는 경험, ...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신'을 위격으로 보지 않는 내재론적 종교 체계가 (뉴에이지가) 제시하는 기법과 방법들은 '아래(저변)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방법들은 인간의 마음이나 영혼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도록 하지만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신성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계획이다. 이것은 흔히 '내면의 신' (인간 신, 이념 신, 우주 신)에 대한 해방의 깨달음으로 이해되는 것을 향한 의식 차원의 상승이다.
 
뉴에이지는 우리 자신의 신성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며 우리가 신이며 우리는 거짓 껍데기를 벗겨 버림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인식하고 이 잠재력의 힘을 더욱 많이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신화'란 신이 되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는 하느님께서 당신 창조물에게 특히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지극히 보잘것 없는 이들에게 내려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회개는 성자를 통하여 성령의 힘에 순응함으로써 성부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 - 은총이다 - 가 발전하면 할수록 하느님을 신뢰하며 의탁하고 ... 자기 심취에서 벗어나 회개할 필요성이 더욱 강해진다. 모든 명상기법에서는 자만심이 제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자기 응시, 평상심, 자기 비움의 실행이 아니라 사랑의 대화로서 "회개의 자세 곧 '자기'에게서 벗어나서 끊임없이 하느님 당신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성’은 결핍이기는 커녕 오히려 가장 위대한 선이다.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구별(타자성)을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이신 하느님과의 일치성은 기대할 수 없다. 하느님과의 일치란 인간이 피조물일 때에 하느님과의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신적(하느님) 본성'' 안에 참여시켜 주시는 것이지, 인간 자체의 ''내면의 신''이 있어 하느님과 ''신적 자아''로 흡수되는게 아닌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전체성'(혼합)의 추구이다. 뉴에이지는 모든 형태의 '이원론'을 극복하라고 촉구한다. 그러한 분리는 깨달음이 부족했던 과거의 불건전한 산물이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옹호자들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리 가운데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실제적 차이, 인간과 자연, 정신과 물질의 실제적 구분이 있으며 이는 모두 이원론의 형태인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뉴에이지의 대안은 '전체론적'이라 불린다. 전체론이 뉴에이지운동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뉴에이지의 정신 확장 기법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적 능력을 드러내 보여 주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힘을 이용하여 깨달음의 시대를 향한 길을 준비한다. 이러한 인간 찬양(인간 중심)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올바른 관계를 뒤집는데 ... 흔히 초월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의심)하면서 인간을 찬양할 때 오는 결과의 하나이다. ... 많은 뉴에이지 작가들은 모든 개개인을 우주의 창조적 근원으로 여기는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환경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뉴에이지에서 '신적인 에너지'는 인간이 이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의 에너지'로 묘사된다. 뉴에이지에서도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나자렛의 예수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뉴에이지에서의 '그리스도'는 자신이 신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리하여 자신을 '보편적 스승'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명칭(나 = 그리스도)이다.  뉴에이지에서 나자렛 예수님은 유일한 그리스도가 아니며 부처나 다른 사람들 처럼 '그리스도적' 성격이 드러나는 여러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뉴에이지는 정확히 말하여 종교는 아니지만 이른바 '신성한' 것에 관심을 둔다. ... 뉴에이지 안에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함에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주를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본다.  -우주는 신의 영혼이나 정신과 동일시되기도 하는 에너지로 생명을 얻는다. -인간은 비가시적인 상위 영역으로 상승할 수 있으며 사후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은 스승을 따른다.
 
뉴에이지로 흘러 들어온 전통 가운데에는 고대 이집트의 비술 관습, 히브리 신비 철학,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지주의, 수피교, 드루이드교 지식, 켈트족의 그리스도교, 르네상스의 헤르메티시즘, 선종, 요가 등이 있다. 뉴에이지는 밀교적 요소와 세속적 요소들이 혼합된 것이다. ... 이러한 배경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 이교들이 현대에 부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신념, 이념)을 "어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이나 가치 등의 총체"라고 보았다.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갈 때에는 대대적인 관점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 분명한 예는 뉴에이지와 그리스도교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의미를 완전히 새로 고쳐 쓰는 일이다. 
 
뉴에이지 영성을 일종의 영적 자아 도취 또는 거짓 신비주의로 본다. 뉴에이지의 대표 주자인 데이비드 스팽글러도 이러한 비판을 하였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후기 저서에서 밀교적 측면이 더욱 두드러진 이러한 뉴에이지 사조와 거리를 두었다. 그의 저술에 따르면 "스스로 환상에 빠져 산다. ... 이러한 차원의 주요 특징은 자아 실현을 위한 내밀한 세계에 집착하고 그 결과 ... 공모와 비밀스런 가르침을 위한 자리이다."
 
 
<'교황청 문헌' / '요한 바오로2세 교황 문헌' 일부>
 
( 괄호 = 게시자 )
 
 
 
 
뉴에이지 현상에 대해 교황께서는 “고대 이단 영지주의(그노시스주의)로의 회귀”를 경고하셨다.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인 마이클 피츠제랄드 대주교는 뉴에이지 현상에 긍정적인 요소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볼 때 분명히 그리스도교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이번 문헌은 뉴에이지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헌은 뉴에이지의 종교성이 (뉴에이지의 종교적 요소) 어떤 면에서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영적 갈망과 일치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계시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뉴에이지는 2~3세기의 영지주의와 자주 연관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뉴에이지를 가장한 고대 영지주의로의 회귀』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뉴 에이지 : 신(흥)영성 운동은 “모든 것이 하나다.”라는 (이분법을 반대하는) 단일론을 내세운다.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일원론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일원론은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로 수렴된다. 그러나 단일론은 차별이나 구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합치(合致)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믿는다. 서로 구별되는 요소들, 곧 신과 인간 사이의 구별(차별)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차별하게 합치 (혼합) 시키려 한다.  <차동엽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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