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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1 조회수1,087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cannot be observed,
and no one will announce,
‘Look, here it is,’ or, ‘There it is.’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
(Lk.7.20-21)
 
 
제1독서 필레몬 7-20
복음 루카 17,20-25
 
어제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던 옛날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1989년. 그러니까 제가 신학교에 처음 들어갔던 해의 가을에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아마도 아침식사 후에 1학년 단체 사진을 찍은 것인데, 이 중에서 신부는 50명(당시 90명 정도 입학을 했었음) 정도만 된 것 같습니다. 그때에는 저 말고 다 신부가 될 것만 같았는데, 제일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저는 이렇게 신부가 되어 있고 대신 정말로 훌륭한 신부님이 될 것 같았던 많은 친구들이 다른 길을 선택해서 생활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진들을 보면서 깨닫는 또 하나, 그때의 모습은 왜 이렇게도 촌스러운지요. 당시에는 유행을 쫓으면서 스스로 꽤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얼마나 촌스럽고 멋없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당시의 유행을 쫓지 않으면서 수수한 옷차림으로 다닌 친구들이 지금보면 오히려 더 멋있게 보입니다.

이렇게 외적인 모습은 정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이 내면의 아름다움만이 내 곁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으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겉으로 들어나는 것만을 보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더욱 더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외세의 침략을 받아 정치적으로 신음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경의 예언처럼 자신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진정한 하느님 나라가 영광 속에 도래할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 하느님 나라는 어떤 정치적 격동을 겪고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느님 나라는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등 사람의 입에서 소란스럽게 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그들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예수님 자신을 보고 알아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마음에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앞서 말한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이 내면의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더욱 더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이웃 형제들에게 실천하게 될 때, 그 아름다움은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입니까?

문제는 나는 할 수 없고, 남에게만 그 아름다움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을 하려는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지금의 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섰을 때 과연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제는 정신 차리고 남의 아름다움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더 큰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 말이지요.

 

개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와야만 한다. 미덕을 강제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기번스 추기경).




근심과 즐거움(운서 주굉, ‘죽창수필’에서)

가난한 사람은 재산이 없는 것을 근심하면서 부유한 사람의 즐거움을 부러워하고 있으나,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대로 근심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지위가 미천한 사람은 벼슬이 없는 것을 근심하면서 귀인의 즐거움을 부러워하고 있으나, 귀인도 귀인대로 근심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 천한 사람, 부유한 사람, 귀하게 된 사람, 모두 각기 자신의 부족한 것을 근심하는 것이다.

천하에 임금 노릇 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자는, 임금이 온갖 세상의 즐거움을 다 누리고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임금은 임금대로 근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근심이 특히 자심하여 오히려 군신이나 백성들의 근심을 부러워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아! 모두 허망한 생각이다. 오직 지인(智人)만이 근심이나 즐거움이 없다.

그러나 근심과 즐거움이 없는 데에 집착하는 것도 역시 허망한 생각이다. 크게 깨닫지 못했으면 자유의 분(分)은 없다.

 
 
 
 
 
Una Furtiva Lagr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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