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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나라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1 조회수502 추천수8 반대(0) 신고
 
 

하느님 나라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17,20-21)

  

 

우리가 꿈에 그리는 이상향의 세계를 유토피아(Utopia)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유토피아라는 단어 속에는 세상에 그런 곳이 없다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단어는 장소를 뜻하는 라틴어 topia에 없다는 부정 접두어인 U가 합쳐져 생겨났습니다. 즉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암울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비웃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거나 언제 오느냐고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속내에 비웃는 심정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네까짓 게 무슨 재주로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비아냥거림입니다. 

또 바리사이를 비롯한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 나라를 장소적 표상으로 여겼다고 보입니다. 지금 현세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으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이런 생각을 고쳐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장소라는 개념으로 한정한다면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스스로 장벽을 쌓고 가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곳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첫 번째 복음 선포로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회개와 하느님 나라의 도래이었습니다. 루카 복음서는 주님께서 기름을 자신에게 부어주시어 주님의 영을 내리셨고 희년의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다는 선포입니다. 즉 자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나라가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소식입니다. 여태껏 그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생소하고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밤하늘에 떠있는 별자리처럼 관찰할 수는 있으나 우리와 동떨어진 어떤 대상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실현 가능한 상태라는 말씀입니다.

그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단 하나 요구 사항은 각자가 쌓아올린 장벽을 허물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수께서는 일일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부자 청년에게 부족한 하나의 장벽은 나눔과 추종이었습니다.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세관장 자캐오에게 장애가 된 것은 군중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다가가려는 열망을 타인들의 평가와 손가락질이 가로막았습니다. 우리 짐작과 달리 예수께서는 상당한 재력가였을 자캐오에게 자선이나 애덕을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나무에 오른 그의 모습을 보시고 아무 조건 없이 공동체에 받아들이셨습니다. 행여 우리는 자캐오와 달리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예수님께 충심으로 다가가지 못하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바리사이들의 장애는 제 생각을 굽히지 않고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데 있었습니다. 자신은 변하지 않고 남 더러 바뀌라고 우기는 데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겪었던 장애는 자리다툼이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군림하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요청하십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예화에서 부자가 저지른 장애는 소통의 부재였습니다. 생각의 범위가 오직 자신 만에 그쳤습니다. 이웃을 헤아릴 줄 몰랐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하나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우리가 쌓아 올린 장벽을 허물 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에서 실현된다고 예수께서 강조하셨습니다. 그 장벽은 하느님께서 쌓으신 것도 악마가 설치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 쌓아 올렸을 뿐입니다. 그러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상야릇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여전히 의심하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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