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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나라와 세계는 아직도 미개한 가부장제다>
작성자장종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1 조회수369 추천수2 반대(0) 신고
 

<우리나라와 세계는 아직도 미개한 가부장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여성 국회의원 숫자는 44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 국회의원 숫자가 150명 이상,

바라기로는, 200명이 되어야

우리나라가 제대로 설 것이다.

그리고 마음씨 착하고 고운

한명숙, 이정희 같은 여성분이

대통령 했으면 좋겠다.

모든 나라, 온 세계에서도

여성이 사회와 나라와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집회서 해설 일부 대목입니다.)

가부장주의란 무엇인가

가부장주의는 남성의 측면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세계관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남성은 좋고 여성은 나쁘다고 여기는 세계관이다. 남성의 자질은 - 활동성, 힘, 주도력, 공격성, 경쟁력, 추리력, 법률, 질서 등은 -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여성의 자질은 - 소극성, 부드러움, 수용성, 감성, 직관 등은 - 부정적으로, 적어도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세계관이다. 그런 세계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짐작하려면, 전통적으로 모든 유다인 남자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사실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여성을 그처럼 무시하고 배척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날 인류학, 종교학, 심층심리학 등 여러 학문은 여성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연구결과는 결정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꽤 많은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 문제를 선사시대, 역사시대, 역사이후 시대로 요약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선사시대 사회는 모계사회였을 것이다. 여성의 자질과 가치를 중시했을 것이다. 선사시대는, 기록된 문헌도 없고 고고학적 발굴작업이나 분석작업이 미진해서, 재구성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종교의 역사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원시시대에는 신들이 실제로 모두 달(月)로 표현되는 여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주로 ‘위대한 어머니’, 생명의 모태와 결부된 온갖 현상들로 표상되었다.

문자가 만들어지고 기술이 발전된 역사시대 사회는 부계사회로서 남성의 자질과 가치를 중시했다. 역사시대는 문헌과 사료로 규명하거나 설명할 수 있다. 비교종교학에 의하자면, 선사시대(모계사회)로부터 역사시대(부계사회)로 건너오면서 신들은 해(太陽)로 표현되는 남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 남성 신들은 여성 신들과 싸우고 물리쳐 사라지게 하거나 굴복시켜 열등한 존재로 만든다. 이 국면은 사상과 학문과 기술의 발전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 발전이 문명 또는 정신개발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성경은 - 오늘날 우리까지도 -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주도권을 행사하는 역사 시대, 가부장적 세계에 속해 있다. 하느님을 남성으로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을 위험하고 악한 존재, 하느님을 반대하는 악의 대행자로 여겨 배격하고 있다. 창세 3에서 벌써 그런 시각을 볼 수 있다. 집회 25,24에 그런 시각이 극히 짧은 말로 요약되어 있다. “죄는 여자에게서 시작되고 여자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는다.” 그런 여성관의 기초에는 가부장주의가 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여성을 나쁜 짓을 하는 존재, 적어도, 의심해 마땅한 존재로 여긴다.

그런 배경에서, 커다란 역사적 투쟁이 신적 세계에 비추어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 즉 남신들이 여신들을 이기고,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남성이 여성을 굴복시키고, 부계사회가 모계사회를 대신하여 정착했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그렇다고, 여성이 죽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짓눌리고 굴복당한 상태일망정, 계속 살아 있으면서 응달에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남성이나 여성에게 지워진 가장 큰 임무는 여성을 해방하여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주는 일이다. 오늘날 그런 일이 여성운동에서 그리고 개인과 집단 심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여신들의 심상이 되살아나 자기 자리를 찾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유다교-그리스도교 신조는 오로지 남성으로만 표현되는 하느님 개념 자체를 수정하기 시작하고 있다. 하느님은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이시리라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 보완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관과 인간관은 셋째 시대, 즉 역사이후 시대, ‘통합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시대와 세계 속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서로의 자질과 가치를 나누고 공유하게 된다. 그럴 때, 남성과 여성으로 형성된 인류 전체는 의식화한 온전함에 도달하여 자기 가능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깊이 따져볼 때, 그 모든 것은 매우 단순하다. 인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각 개인의 역사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인생의 첫째 국면에서, 인간은 어머니라는 여성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모계사회). 인생의 중반까지 둘째 국면에서는 아버지라는 남성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인생의 중반 이후 셋째 국면은 서로 침투하고 뒤섞이는 국면, 즉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는 국면이다. 통합된 세계가 이루어지는 이 국면에서라야 인간은 온전히 성숙하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첫째 국면이나 둘째 국면에 머물러 있으면서 셋째 국면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수많은 장애물이 그 과정을 가로막는다. 더구나 인류 역사 전체 안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각 개인의 작은 역사 안에서도 일어나지 않기 십상이다. 그러나 역사상 위대한 성현들과 같은 예외는 있다.    


가부장제는 강한가 약한가

시라의 아들 예수가 쓴 본문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배척, 단죄, 혐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가부장제가 강한지 약한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심층심리학에서는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태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을 원하는 보상심리를 반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약한 사람은 권력, 강요, 지배, 지나친 공격성 등을 가지고서 자기의 약함을 보상하려는 경향을 띤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에게 귀속시키는 자질들이 바로 그런 자질이 아닐까? 그렇지만 체험이 보여주고 심리학이 밝혀주는 것처럼, 그런 자질들은 약함, 예속상태, 열등감 등과 같은 정반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가부장제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남성이 힘과 권력을 뽐내려 하는 것은, 실은, 자기의 약함과 열등감을 보상받으려는 변장술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 강제수단을 쓰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자기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가부장제는 위협을 느끼는 어떤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심리의 발현 이상이 결코 아니다.

많은 여성은 이미 완결되어 있으며, 자기 본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남성은 아직 온전한 자기 개발에 이르지 못했으며, 아직도 자기 본모습을 구축해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가부장제를 고집하면서 권력을 쥐고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모든 태도는 남성만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지키려는 행위 이상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개인적인 예외는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인류가 자기 목표에 다다르지 못한 역사시대에서 볼 수 있는 태도다. 언제쯤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여성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여성운동사를 예리하게 살펴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 및 그들의 무기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데 그쳤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여성들은 오히려 그 어느 때 보다도 자기네 여성다움을 거듭 다져가야 한다. 그래야 남성들도 자기네 남성다움을 개발하려고 애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라야, 여성과 남성은 온전한 평등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번 얻은 자유에 안주하는 한, 늘 새로운 노예상태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 측면과 남성의 측면을 통합시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려고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에 관하여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측면은 여성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가부장적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은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쳐야 했다. 그러다가 여성은 최근에야 남성이 실은 허약함을 알아차리고 자기네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인간을 무조건 보호하는 영원한 어머니가 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남성에 기대려 하고 가부장주의를 부추기는 여성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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