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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거양득(一擧兩得)" - 11.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2 조회수377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1.12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2요한4-9 루카17,26-37

 

 

 

 

 

"일거양득(一擧兩得)"

 

 

 

걸어 기도해서 좋고 운동이 돼서 좋으니 일거양득입니다.

얼마 전 깨닫고 쾌재를 불렀습니다.

끝기도 후 고즈넉한 고요한 시간,

수도원 경내의 길을 따라 걸으며 바치는 묵주기도가

불현듯 성모님 손을 붙잡고 산책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깨달음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 성모님과의 산책 시간이 묵주기도시간입니다.

기도해서 좋고 운동이 돼서 좋으니

말 그대로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는

성모님과의, 주님과의 복된 산책의 기도시간입니다.

혼자서는 참 재미없는 길도,

또 몸 피곤해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걸으면

새 힘이 나고 시간 가는 줄 모르듯

성모(주)님과 함께 걷는 길도 그러합니다.

 

예전 저 어렸을 적 50-60년대는 참 많이들 걸었습니다.

하여 잘 먹지 못하고 가난했어도

자연 속에서 자연친화적인 삶이었기에

성인병도 없이 건강했고 행복했습니다.

아침 등교시간 10-20리 걷는 것은 예사였고,

교복을 입고 떼 지어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던 모습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이때는 시골길도 살아있는 사람들로 출렁출렁 살아있었습니다.

올레 길 같은 인위적인 길이 아니라

시골 오솔길은 모두가 올레 길이었습니다.

장이 서는 날 줄줄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장에 가던 이웃들,

사람들은 참 많이도 걸었고

하여 가난하고 몸은 고단했지만 건강하고 행복했습니다.

 

이런 고향이 사라진, 고향을 잃어버린 작금의 현실입니다.

잘 난 도로에 이따금 씽씽 달리는 자동차에

걷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는 황량한 시골길입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었는데

이제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게 되었고,

좌우 사방이 꽉 막힌 인위적인 아파트 숲에서 살아가니

자연친화적인 고향의 정취는 추억 속에서나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주로 ‘걷는 것’에 대해 많이 묵상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두 귀로 볼 수 있고,

두 손으로 기도하고 일할 수 있고,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축복입니다.

특히 성경에서는 사는 것을 걷는 것에 즐겨 비유합니다.

삶은 여정이요 걷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Blessed are they who walk in the law of the Lord!).”

화답 송 후렴도 직역하면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

이 말씀이 더욱 실감납니다.

또 1독서에 나오는 두 구절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walking in the truth)”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walk in the love)'는 것입니다.”

 

며칠 전 치과병원에 진료 받으러 갔다가 읽은 좋은 구절도 생각납니다.

 

“진리에 대한 사랑은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도 그 상급을 지닌다.

  (The love for truth has its reward in heaven and on the earth)”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 진리 안에서 사는 이들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행복을 누리리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미국의 영성이 뛰어 난 아빠스님의 피정지도 시 강조했다는

주님의 세 말씀도 생각납니다.

 

“I am with you. I love you. Trust me.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를 믿어라)”

 

그대로 복음을 요약합니다.

이 세 말씀만 명심하여 살아내면 만사형통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임과 동시에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매일의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주님께 바치는 공동전례의 미사와 성무일도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걷는 삶을 실현시켜 줍니다.

진리와 사랑 안에서의 삶은

그대로 부단한 회개를 통한 깨어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래야 세상 죄악의 유혹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하는 행위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이런 현세적 육적 일에 올인(all-in)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노아시대 사람들이나 롯 시대 사람들,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현세적일임을 완전히 잊고 이에 몰두한 것이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나는 날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그대로 하느님을 잊고 탐욕에 빠져 현세적 육적 일에 몰두하는

오늘 날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현세에 집착하여 뒤돌아 보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주님을 향한 여정에 충실 하라는 말씀입니다.

환경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환경에서의 운명도 다 제각기 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한 침상에서 잠들어 있던 두 사람 중,

또 함께 맷돌질을 하던 두 여자 중,

깨어 진리와 사랑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걸었던 이는 구원이었지만,

그러지 못한 이는 버림 받았습니다.

좋으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걸으시고자,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오십니다.

 

“행복하여라, 주님과 함께 걷는 이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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