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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가 큰 곳에 은총도 크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6 조회수555 추천수8 반대(0) 신고
 
 

 

죄가 큰 곳에 은총도 크다 - 윤경재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루카 19,1-10)

 

 

신학자 폴 틸리히는 그의 저서 ‘존재의 용기’에서 사람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불안한 존재라고 썼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언젠가는 ‘꼭 죽는다.’라는 죽음의 운명 탓에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죽음의 운명이 언제 홀연히 우리에게로 닥쳐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존재의 불안’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언제 심판과 불행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 하나로 그보다 몇 십 배의 보복이 밀려올지 모른다는 불안입니다. 이것을 ‘도덕적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는 돈을 벌면 벌수록 반비례하여 생겨지는 공허감, 명예와 권력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 속에 이상스럽게 침투하여 들어오는 무의미함, 선한 일을 하면 할수록 뒤따르는 짜증과 불만 등, 이것을 ‘영적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자캐오를 보면 폴 틸리히가 말한 세 가지 불안을 누구보다 강하게 느꼈던 같습니다. 특히 ‘도덕적 불안’과 ‘영적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옭죄어 오는 불안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나봅니다. 예수라는 분에 대한 소문을 듣자 어쩌면 그 불안에서 벗어나는 돌파구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주류에 끼지 못한다는 외톨이 콤플렉스입니다. 본문에서는 그의 키가 작았다고 표현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려서 받은 몇 개의 상처 탓에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예가 많습니다. 대개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입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이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생긴 상처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처 탓에 인생을 있는 그대로 넓은 시야로 보지 못하고 좁은 눈으로 보아 자기의 틀 안에서만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거의 자동인형처럼 반응하게 됩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자기 의사에 관계없이 반응하는 자동인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일도 되풀이해서 저지르게 됩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상처를 건드리면 억제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그러고 나선 자동인형이 된 자신이 미워 또 다시 이유 없는 분노가 솟구쳐도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외톨이 콤플렉스에 걸리면 점점 외톨이가 되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갑니다. 만인의 손가락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논리로 합리화하면서 외딴 길을 걷습니다. 세관장 자캐오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가 성공했다고 여길수록 군중은 더욱 그를 외면했습니다. 자캐오는 더는 지탱할 수 없는 강한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는 자각을 뼈에 사무치도록 했습니다. 

선한 예수님의 얼굴만이라도 한번 바라본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자캐오는 예수께서 지나가실 길목에 나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그를 가로막고 내몰기에 바빴습니다. 사방이 두꺼운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화가 치솟고 강짜라도 부릴만했는데 오늘만큼은 달랐습니다. 거룩한 분 앞에서 죄짓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온 사방이 막혔어도 하늘만큼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지혜가 불현듯 솟았습니다. 그는 돌 무화과 나무위에라도 올라가기로 합니다. 

거기서 자캐오는 예수께 뜻밖에도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죄인인 자신의 집에 머물겠다는 초대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자신의 더러운 죄가 선하신 그분에게 옮겨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더러운 죄인인 자신 탓에 고결하신 예수께서 모욕을 당하신다고 생각하니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자캐오는 자신에게 죄를 물어도 되지만, 그분에게 죄를 돌린다는 것이 천부당만부당하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를 기워 갚는 일을 생각해내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에 정한 것보다 훨씬 크게 갚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 탓에 공연히 죄인이 되었던 온 가족에게까지 구원을 내려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외톨이에서 벗어나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자캐오는 창세기 3장21절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용서와 은총에 감사의 눈물을 지었습니다.

죄인인 자신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말씀을 시험하고 어기는 죄를 지었지만, 당신의 몸을 찢어 만든 가죽 옷을 입혀 주셨다는 말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자캐오의 큰 죄를 감당하시고 자신에게는 예수님의 몸으로 만든 가죽 옷을 입혀주신 것이었습니다. 그저 희생 제물로 바친 짐승을 잡아 가죽을 벗겨 만든 옷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몸을 찢어 만든 옷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도저히 기워 갚을 길 없는 죄인에게 당신의 몸으로 만든 가죽 옷을 입혀주셨다고 깨달은 자캐오는 더는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죄가 큰 곳에 은총도 크다.’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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