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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뒤집어 생각하기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7 조회수424 추천수5 반대(0) 신고
 
 
 

뒤집어 생각하기 - 윤경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루카 19,11-27)

 

 

새벽 미사 후에 몇몇 형제들과 오늘 복음 내용인 미나의 비유에 관한 묵상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중에 한 형제분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 미나씩 받은 종 열 명 가운데에 종자돈으로 받은 한 미나를 모두 탕진한 종은 없었을까요? 그랬다면 왕이 되어 돌아온 주인이 과연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말을 했을까요? 

아주 재미있는 착상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우리는 각자 “맞아. 나도 아마 그 한 미나를 모두 허비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 한 종이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내게 주인은 어떤 일침을 내리셨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주인에게 쓴 소리를 듣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종은 주인의 의도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가 말한 핑계를 들어보면 주인을 얼마나 오해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그가 저지른 잘못은 우선 주인을 냉혹한 분으로 착각하고 상황대처를 그릇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그의 말속에 모순되는 점이 발견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귀중한 보물이 생기면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땅에 파묻어 두거나 은행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종은 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큰돈을 단지 수건에 싸서 두었습니다. 혹시라도 발생할 도난에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주인이 두려웠다면 이렇게 소홀히 돈을 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속마음은 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인을 괴롭혀 보려는 태도가 담겼습니다. 일종의 태업입니다. 바로 게으름이 그가 지은 죄입니다. 

루카 저자는 본문에 백성들이 주인이 왕권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는 내용을 적어놓았습니다. 그가 자신들의 왕이 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사절까지 보냈다고 썼습니다. 자칫 아무 상관없는 내용인 것처럼 넘길 수도 있지만, 그가 귀중한 성경에 굳이 아무 까닭 없이 이런 내용을 담았을 리가 만무합니다. 또 다른 역발상을 해보라는 주문일 수 있습니다.

게으름은 몸을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게으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살더라도 게으름뱅이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 전날 시험공부 대신에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책상정리를 하거나 심지어 공부방 대청소를 한다면 과연 그를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부를까요? 게으른 학생이라고 책망할 것입니다. 아무런 물음과 생각 없이 일상적인 생활을 바쁘게 사는 것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은 느림이 아니라 삶의 방향성을 잃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하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몸이 바쁜 게으름뱅이’는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들의 특징은 자신을 미화하고 모든 탓을 남에게 돌린다는 것입니다. 신중함으로 돌리거나, 성격의 여유로움으로 미화하고, 닥치면 다 해낼 거야라고 합니다. 또 우리 집안 내력이야, 일이 바빠서 등등 핑계를 댑니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스스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소소한 것에 매달려 사안의 경중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게으른 종을 책망하시는 까닭은 단순히 그가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삶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잃고서 남들의 소문에 부화뇌동했기 때문입니다. 어찌 종이 자신이 모시던 주인의 습성과 인간성을 몰랐겠습니까? 게으른 그가 적극적으로 주인을 알려하지 않았기에 나온 오해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몰라서 못했다기보다는 삶의 타성에 빠져 진실에 접근하려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위장된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각성의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질문과 좋은 답을 구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내 모든 행위에 숨은 진실은 없는지 뒤집어 생각해보고 검증해보아야 합니다. 

그 형제분의 질문대로 우리가 한 미나를 모두 잃었다면 지혜로운 주인이 무엇이라 말씀하셨을까요? 과연 야단을 치고 책망하셨을까요? 

그 답은 우리 스스로 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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