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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찬미하라" - 11.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17 조회수357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1.14 연중 제33주일

말라3,19-20ㄴ 2테살3,7-12 루카21,5-19

 

 

 

 

 

"주님을 찬미하라"

 

 

 

매일 하느님 찬미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주님의 모든 업적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영원히 주님을 찬송하고 찬미들 하라.

  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의 별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땅아, 주님을 찬미하라. 산과 언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느님을 찬미할 때 참 기쁨이, 영원한 기쁨이 샘솟습니다.

하느님 찬미에 이 거룩한 미사보다 더 좋은 것도 없습니다.

시들어 무디어졌던 감성이 살아납니다.

하느님 찬미가 허무한 삶을 충만한 삶으로 바꿉니다.

매일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삶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선물의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바꿔야 할 것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요

마음이 새로우면 모두가 새롭습니다.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우주 만물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 찬미뿐입니다.

하여 매사 새롭고 놀랍고 고맙습니다.

 

 

얼마 전 선종하신 안동교구 류 강하 신부님과 두봉 주교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두봉 주교님께서 하신 장례미사 강론 중 소개된 내용입니다.

류 강하 신부님이 마지막 투병 중일 때 문병하신 두봉 주교님은

‘주님이 부르신다. 좋겠다. 참 축하한다.’ 말하자,

류 신부님은 호흡 곤란으로 말은 못하고

두봉 주교님의 말이 맞는다는 뜻에서 박수를 그렇게 치더랍니다.

이어 두봉 주교님은 류 신부가 자신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 것이

안타깝다고 말씀하시며 다음 말로 강론을 마무리 지으셨다 합니다.

 

“류 신부, 좋으시겠습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평생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감사하게 사신 분이 아니라면

결코 죽음 앞에 이런 축하의 인사말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찬미의 삶일 때 매사가 놀랍고, 새롭고, 고마운,

하느님 은총의 선물로 가득한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다 지나갑니다. 속지 마십시오.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세월의 흐름에서 빗겨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 지나 간다.’ 아주 단순한 말이었지만

어느 분은 이 말을 들었을 때

아주 편안했고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합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올인(all-in)하지,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은 지나가는 것들이 영원한 것인 양 집착에서 생겨납니다.

시간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또한 지나갑니다.

하느님의 흐름 속에 내버려 두어

흘러가게, 지나가게, 사라지게 내버려 두는 겁니다.

붙잡아 놓으려 하기에 고통이요 괴로움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말라.”

 

우리를 속이는, 유혹하는 거짓 것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온통 미쳐 제 정신이 아닌 세상 같습니다.

이런저런 것들도 지나갑니다.

현혹되어 따라가지 말고 가만히 멈춰 기다리며 바라보십시오.

혼란할 세상일수록 혹세무민의 사람들은 날뛰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지나갑니다.

세상 삶이 어려울수록 종말 이야기들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전쟁과 반란, 기근, 지진, 전염병,

하늘에서의 표징들에도 경거망동 휩쓸리지 말고

하느님 안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들도 지나갑니다.

설령 예기치 못한 박해가 있더라도

동요하지 말고 하느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이런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지나가는 것들에 속지 않고,

또 마음 뺏겨 집착하지 않고 흘러가게 내버려 두게 합니다.

언제나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게 합니다.

 

 

 

하느님만이 미래요 희망입니다.

 

남는 것은 하느님이요 하느님 아닌 모두는 환상입니다.

보이는 것들에 미래를, 희망을 두었다간 필시 좌절이요 환멸입니다.

하느님이 미래요 희망일 때 비로소 사람이 미래요 희망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미래를 가늠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많은 이들이 절망합니다.

인간 탐욕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로

실제 지구 종말의 불길한 징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하느님만이 미래요 희망이 될 때

저절로 절제와 절약의 검소한 생활로 비로소 인류도 지구도 구원입니다.

특히 수도승들이 좋아하는 11월부터의 계절입니다.

아니 수도승들뿐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단순 소박한 이들이 좋아하는 지금의 계절입니다.

환상의 나뭇잎들 다 떨어져 나간

나목의 나뭇가지들 가득 채운 하늘이요 별들입니다.

나뭇잎들 다 사라지니 그 자리 가득 찬 하늘,

바로 하느님이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임을 알려주는 상징입니다.

나뭇잎들, 열매들 다 사라진 텅 빈 그 자리에

하늘과 별들로 가득 차니 텅 빈 충만의 나무들입니다.

우리의 온갖 탐욕 사라진 그 자리 가득 차는 하느님,

바로 이 하느님을 체험할 때 참 행복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진정 하느님이 미래가 희망이 된 이들이 부자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하나만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부수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삶을 사는 단순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하느님 안에 사는 이들 아무도 다치지 못합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습니다.

무조건 참고 견디는 인내가 아니라 부단히 받아들이는 인내입니다.

부단히 기다리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깊고 넓은 인내의 마음 역시 하느님 안에 머물기에 가능합니다.

부단히 하느님께 희망을, 신뢰를 둘 때 인내로 생명을 얻는 구원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의 종말입니다.

 

언젠가의 종말이 아니라 오늘을 바로 종말처럼,

종말을 앞당겨 오늘 첫날이자 마지막처럼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라키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그대로 우리의 선택과 결단의 회개를 촉구하는,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충격요법의 표현입니다.

과연 우리의 지금 삶은 어느 쪽입니까?

거만하고 악을 저지르는 검불과 같은 천박한 삶입니까?

주님을 경외함으로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는

빛나는 삶입니까?

언제가 그날의 종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깨어 주님을 경외하는 종말적 삶을 살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구원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미래를 바라는 이들,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현재를, 영원한 오늘을 삽니다.

오늘은 우리의 남은 날들의 첫째 날입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 중 명대사)

가장 좋은 일은 이제부터입니다.

(The best is yet to be; 브라우닝의 시구)

오늘은 바로 우리의 미래요 희망입니다.

이게 진정 이상적 현실주의자의 진면목이요, 참 신비가의 면모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그 모범입니다.

구원은 저기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삶의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바로 우리 수도승 노동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영성생활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의 이런 인간 기본에, 상식에 충실한 삶이

영성생활의 진정성을 입증합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묵묵히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현자의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찬미하라.’ 오늘 강론의 제목입니다.

 

참 행복과 기쁨의 열쇠가 여기 있습니다.

조환길 대주교님의 사목표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주님을 찬미할 때

비로소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안정과 평화입니다.

다 지나가는 것들을 초연히 바라봅니다.

세상 그 무슨 환상이나 유혹에도 속지 않습니다.

하느님만이 미래요 희망임을 깊이 깨닫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오늘 바로 그날의 종말의 날을,

영원한 오늘을,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아침 새벽 하늘의 무수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쓴 글을 나눕니다.

 

 

 

난 참 욕심이 많다

밤마다

마음 안에 꼭꼭 담아 두는

하늘의 별들

마음은

희망, 사랑, 믿음의 별들 가득

빛나는

하늘이 된다.

 

 

 

주님은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의 하늘이 되어 주시고

빛나는 희망, 사랑, 믿음의 별들 가득 떠오르게 하십니다.

 

"저는 하느님 곁에 있어 행복하옵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시편73,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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