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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21일 야곱의 우물- 루카23,35-43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1 조회수439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35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 41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시작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의 모상이며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운 창조물’ 로 태어나게 하소서.

독서
십자가 아래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자유의지로 두 가지 길, 두 가지 운명, 두 가지 태도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됩니다.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루카복음은 예수님 십자가 옆에 나란히 못 박혀 있던 두 죄수의 인생의 마지막 선택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죄수’ 가 아니라 악한 일을 저지른 범죄자들입니다. 먼저 예수님 옆에 매달린 죄수 하나가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23, 39) 라고 조롱합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 (2절) “유다인들의 임금” (3절, 38절) 이라는 죄목으로 고소하는 것을 바라보고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지도자들과 군인들은 예수님께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라.” (35절, 37절) 고 조롱 합니다. 그러나 이 죄수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라고 모독합니다. (39절)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죄수는 ‘사람의 아들’ 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지금이라도 구름을 타고 기적처럼 등장하여 자신을 ‘고통’ 에서 구해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21, 27 – 28 참조)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시며 오직 하느님에게서 구원이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분은 자기 묵숨을 잃음으로써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하느님의 논리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9, 24) 예수님은 힘 있는 메시아가 아니라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아들로서 존재하십니다.
 
예수님 옆에 있던 다른 범죄자는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자신을 ‘기억해 달라.’ 고 요청합니다. 왜 이 사람은 다른 죄수처럼 행동하지 않을까요 ? 핵심은 그가 다른 죄수처럼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을 바라본 것’ 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기’ 를 선택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태도는 ‘좋은 몫’을 택했다고 예수님이 칭찬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와 같습니다. (루카 10, 38 – 42 참조)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영혼을 방해하는 온갖 외적인 소란을 차단해 버립니다. 그 철저한 집중 때문에 그는 자신의 손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 절대적인 고통의 순간에도 바로 옆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23, 33 – 34) 라는 기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갑작스럽게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존재 전체를 흔들어 놓아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 라고 다른 죄수를 나무라기까지 합니다. (40절) 십자가 옆에 있는 순간은 그에게는 하느님을 조롱하는 순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순간입니다. 성경과 유다이즘에서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야훼 앞에서 인간이 갖는 진정한 종교적인 자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진정한 지식의 뿌리이자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을 갈라놓는 기준선이기도 합니다. (잠언 1, 7) 이 죄수는 십자가에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찬란한 사랑의 계시를 보고, 그리스도의 인격의 신비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예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 백성만을 돌보도록 부름 받은 이 지상의 다윗의 나라가 아니라 (제1독서) 진리와 생명, 거룩함과 은총, 의로움과 사랑의 왕국임을 알아봅니다. (미사감사송)
 
예수님은 미래의 구원에 대한 요청에 낙원에 ‘나와 함께 갈 것이다.’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를 약속하십니다. 낙원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당이라기보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누리는 친교,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필리 1, 23) 을 의미합니다. ‘낙원’ 이라는 말은 또한 창세기에서 첫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하느님과 내밀한 친교를 누리던 복된 장소입니다. 이제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당신에 대한 믿음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 이 된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활한 그리스도와 누리는 친교 안에서, 아담으로 인해 상실된 그 하느님 체험을 다시 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성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유일한 말씀 (43절)은 본문의 주인공이 두 명의 죄수가 아니라 ‘오늘’, 십자가 앞에서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 을 갖는 사람들을 낙원으로 데려가시는 그리스도임을 알게 합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신” (콜로 1, 20) 하느님의 아들, 만물의 왕이십니다.

기도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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