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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의 끈" - 11.2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1 조회수342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1.20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요한 묵11,4-12 루카20,27-40

 

 

 

 

 

 

"희망의 끈"

 

 

 

“나의 반석(희망),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시편144,1ㄱ).

 

희망의 끈, 하느님의 끈 놓치면 절망의 어둠, 죽음의 어둠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입니다.

누군가는 사람을 망하게 하는 셋을 삼망이라 하여

절망, 원망, 실망을 들곤 합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낱말이 절망입니다.

절망이 대죄입니다.

절망 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는 이들이 진정 믿는 이들입니다.

‘절망은 없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다.’라는 말 모두

희망의 하느님을 암시합니다.

희망은 빛입니다.

희망의 빛이 들어올 때 절망의 어둠은 사라집니다.

희망이 있을 때 밝고 열려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진정 이런 희망의 사람이 매력적입니다.

반면 절망할 때 어둡고 닫혀있고 우울합니다.

누구나 대하기 싫어할 것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어둡고 무겁고 추운 날씨가

따뜻하고 밝은 태양을 그리워하게 합니다.

바로 태양 같은 희망입니다.

 

희망에 대해 몇 가지 떠오른 실례를 듭니다.

 

1.얼마 전 어느 자매님이 기쁜 얼굴로 저를 찾았습니다.

  결혼한 딸이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어 걱정했는데

  아이가 생겼다는 복음이었습니다.

  바로 ‘아이’가 부모는 물론 할머니에게 희망입니다.

  출생률이 최저이고 자살률이 최고라는 우리의 현실은

  희망보다는 절망 쪽에 기울게 합니다.

 

2.어제 어느 분이 기쁜 음성으로 딸이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즘 같이 암울한 시대에 결혼하는 젊은이들을 대하면

  참 장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내 일처럼 기쁩니다.

  이 또한 희망의 표지입니다.

  적령기에 이르렀어도 사정상 결혼하지 못하는 이들 얼마나 많은지요.

  역시 희망보다는 절망 쪽에 기울게 하는 현실입니다.

 

3.제 집무실 벽, 벽시계 바로 밑에는

  ‘하느님’이란 글씨를 쓴 종이가 붙어있습니다.

  마침 ‘하느님’에 대한 강의 준비 차 늘 하느님을 묵상하게 위해

  붙여놓은 글씨입니다.

  한 눈에 들어오도록 자리를 찾으니

  자주 시간을 확인할 때 마다 보게 되는

  시계 밑의 ‘하느님’이란 말입니다.

  시간의 벽을,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느님(영원) 안에 있는 시간이요,

  시간 안에 있는 하느님(영원)일 때

  비로소 시간은 자유로 열린 희망의 문이 됩니다.

  새삼 하느님은 희망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4.얼마 전 피정을 마치고 간 어느 분의 말씀도 잊지 못합니다.

  "단풍잎들 다 진 겨울 나목의 가지들이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졌는데

  강론을 듣고 보니 그 빈자리가 하늘의 충만 임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목의 나무 가지들만 봤지

  나무를 가득 채운 배경의 하늘을 미처 못 봤습니다.”

 

우리가 지닌 온갖 탐욕과 환상들 다 사라진 뒤

남는 것은 텅 빈 허무가 아니라 텅 빈 충만의 하느님이라는 진리를,

하느님만이 바로 영원한 희망임을 깨우쳐 주는 가난한 겨울나무들입니다.

 

5. 위령미사 시 감사기도 3양식 중 다음 대목 역시

  하느님이 죽음을 넘어 영원한 희망이심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

 

한없는 위로와 힘을 주는 기도문으로

자주 평일 미사에도 사용하는 부분입니다.

죽음에 대한 답은 희망의 하느님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은 절망 중에도

보이는 것들 넘어 이런 영원하신 이런 하느님을 희망합니다.

오늘 1독서의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두 예언자들,

이들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 생명을 향한 희망의 문이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을 부활시켰고 이어 승천입니다.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복음 역시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부활의 희망으로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 있는 이들은,

하느님이 그의 영원한 희망인 이들은

생사를 넘어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바로 이게 부활의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로 자기를 비운 우리 모두를 당신 희망으로 충만케 하시어

텅 빈 허무가 아닌 텅 빈 충만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행복하여라, 주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시편34,9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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