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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난한 과부의 봉헌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2 조회수882 추천수7 반대(0) 신고
 
 
가난한 과부의 봉헌 - 윤경재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예수께서 성전에 가셨다가, 가난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 구절 바로 앞에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들은 남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짐짓 거룩한 체하는 행동을 보이고, 긴 예복을 입고 다니며 인사받길 좋아하며, 기도만은 남에게 보이려고 오래 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는다고 예수님께서 몹시 질책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겉치레를 매우 싫어하시지만, 신심을 과시하는 겉치레를 특히 경멸하십니다.         

가난한 과부는 가졌던 돈의 전부인 작은 동전 두 닢을 헌금 궤에다 넣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였기에 자신을 부양해 줄 남편이 없었고, 동냥질하는 비렁뱅이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두 닢의 렙톤은 남들이 생각하듯 적은 돈이 아닙니다. 오늘과 내일을 기약하는 돈이며 자신을 든든하게 만들어 주는 돈이기도 했습니다. 그녀에겐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돈을 내놓은 것입니다. 즉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봉헌한 셈입니다.

 

교부들은 동전 두 닢을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육체와 영혼을 표상한다고 보았습니다. 완전하신 하느님에 비교해 우리의 몸과 영혼은 그저 렙톤 두 닢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바친 과부는 육체와 영혼을 모두 바친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 모두를 바친 까닭에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바친 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마음은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봉헌물은 우리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재물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선물을 주듯 꺼내놓는 봉헌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밀한 곳에서 나오는 것, 곧 자기를 바치는 봉헌입니다. 이 봉헌물은 우리가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어떤 재물보다 훨씬 귀중합니다.

우리가 지닌 그 어떤 유형무형의 재물도 하느님 앞에선 무가치합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재벌의 부유함도, 미인대회에서 일등 상을 받은 미모도, 천재적 두뇌를 지닌 예술가, 과학자, 정치가의 능력도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부유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재산, 보물, 재능, 명예, 용모 등 그 무엇하나도 하느님께서 지으시고 우주상에 널려 있는 그 어떤 피조물과 비교하여도 보잘것없습니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봉사행위, 교리교육, 전도, 가르침, 친목과 같은 능력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방언을 말하고, 기적을 행하고, 치유의 은사를 하는 능력도 모두가 그분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누구라도 넘치도록 받을 수 있습니다. 나라고 해서 특별히 더 받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특별히 하느님께 사랑을 더 받아 그런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는 오로지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그런 삶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지금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녀가 가진 것이란 가난과 외로움과 연약함, 극도의 궁핍뿐입니다. 

욥기에 욥이 뉘우치며 잿더미 위에 앉아서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욥기 42,2-6)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이전에 부유하고 행복했을 때 이웃에게 베풀었던 선행, 그의 인간적 업적, 그가 넘치도록 받았던 넉넉한 풍요는 이제 와서 보니 하나도 자랑할 게 없고 모두 티끌이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즐겨히 받으시는 것은 나 자신의 봉헌이지 그 어떤 ‘여유분’도 아님을 이제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지 않는 한 어떤 봉헌물도 즐겨히 받으실 리가 없습니다. 그분은 무엇에도 부족함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보태 드린다는 것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영혼의 찬양을 즐겨이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전 존재, 내밀한 자아를 바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다른 봉헌은 참 쉽습니다. 그야말로 여분이니까요. 또 채워 주시니까요.

우리의 존재라는 선물에는 행복과 기쁨처럼 좋은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심각한 고통과 나약함과 죄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영적 빈곤에서 나오는 이 같은 예물이야말로 현세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런 선물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선물을 하느님께서는 더 즐겨 받으시는 것입니다.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우리가 그래도 꾸준히 당신을 섬길 때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처럼 기뻐하십니다.


예수께서 성전 헌금 궤가 있는 곳에 오셔서 사람들을 지켜보신 이유는 누가 돈을 더 많이 넣는지 보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작은 봉헌물을 기꺼이 집어넣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시고자 함입니다. 우리의 봉헌도 과부처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바쳐야 합니다.

우리가 바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면,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바를 겸허히 들어야 합니다. 주님께 봉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침묵을 지키고 작아져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우리는 진정 가난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내가 가졌다고 자랑할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내 것이라 주장한다면 죄인이 될 뿐입니다.  

오로지 성령의 기도만 그분이 즐겨 받으시는 분향이며, 남몰래 드리는 침묵만 그분이 즐겨 받으시는 흠숭인 것을 이제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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