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 안에서의 삶" - 11.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3 조회수433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11.23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요한 묵14,14-19 루카21,5-11

 

 

 

 

 

"하느님 안에서의 삶"

 

 

 

모처럼 휘영청 밝은 달,

보름 다음 날인 지난밤 참 크고 둥근, 밝은 달이었습니다.

 

온 누리를 밝게 비추는 달을 보는 순간

오래 전에 써놓은 ‘둥근 달’이란 자작 애송시가 생각났습니다.

 

 

“푸르른 밤하늘

  휘영청

  밝은 달, 하나

  온 누리 환히 밝힌다.

  푸르른 고독이

  휘영청

  환한 사랑

  둥근 달 하나

  낳았구나.”

 

더불어 떠오른 불가의 말,

계속 뇌리에 남아있었지만 잘 알 수 없었던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이란 말의 의미가 환히 밝혀졌습니다.

낮에는 부처님을 보듯 해를 보고,

밤에는 부처님을 보듯 달을 보라는,

늘 해처럼, 달처럼 밝고 환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해

낮에는 하느님을 보듯 해를 보고 밤에는 하느님을 보듯 달을 보며,

늘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처럼,

하느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고 의연하게,

해처럼, 달처럼 밝고 환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의 제자리에서 살라는,

정주 영성의 핵심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의 중심을 떠나 방황이요 혼란입니다.

하느님은 저기 어딘가에 있는 분이 아니라 지금 여기 계십니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기에

언제 어느 곳이나 하느님 안 제자리의 중심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만나는 꽃자리입니다.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란 시를 나눕니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 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 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 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 인 것을…”

 

 

그렇습니다.

후회는 언제해도 늦습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꽃자리임을 알아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 안, 제자리의 중심을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안정과 평화요 말 그대로 일면불 월면불의 삶입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의 중심 안에 머물지 못해,

믿음의 뿌리 내리지 못해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제자리의 중심을 잊어 유혹에 빠져

나를 잊고 부화뇌동 이것저것 뒤를 따르며 방황입니다.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하느님 안, 제자리의 중심을 잊어 무서움과 두려움에 경거망동 방황입니다.

누가 뭐래든 하느님 안, 제자리의 중심 안에 머물며 충실할 때

안정과 평화요 구원입니다.

누가 내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초하는 구원과 심판입니다.

언젠가 갑자기의 구원과 심판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구원과 심판은 시작됩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임을 알아 기쁘고 감사하게 살면 구원이요,

꽃자리임을 잊고 되는 대로 막 살면 심판입니다.

 

어제 읽은

‘모든 시간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All time is in God’s hand).’는

말씀이 위로도 되고 경고도 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 하느님의 때 안에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고,

탄생의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듯 하느님의 심판의 때도 있습니다.

하여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수도교부들의 말씀입니다.

결정적 죽음의 때, 심판의 때를 염두에 둬야

오늘 지금 여기 깨어 꽃자리의 삶을 살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시록의 말씀 역시 우리의 나태함을 일깨우는 죽비 같은 말씀입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되었습니다.”

 

천사의 전갈에 의인들을 추수하는 심판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이어 불충실했던 이들에 대한 심판이 이어집니다.

 

“그 날카로운 낫을 대어 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이어 심판을 맡은 천사는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어들인 후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버립니다.

의인들은 주님 친히 수확하셨지만

불의한 이들은 천사를 시켜 심판하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 안, 제자리의 중심을 깊이 깨닫게 하시어,

오늘 지금 여기서 꽃자리의 구원을 살게 하십니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묵시2,10참조).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