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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1주일 본문+해설+묵상>-많이들 좀 읽어주세요
작성자장종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6 조회수492 추천수2 반대(0) 신고
 

가해 해설판 주일미사




대림 제1주일


제1독서(이사 2,1-5)

주께서 모든 백성을 영원한 천국 평화에 부르신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시편(121)

주님의 집으로 가리이다


제2독서(로마 13,11-14)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복음(마태 24,37-44)

깨어 있으면서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대림 제1주일

독서・복음 해설


제1독서(이사 2,1-5) 해설

전례 신년 벽두에 이사야 예언자는 모든 백성이

‘평화의 도시’로 모여들 것이라고 선언한다


시적인 이 대목은 이사야서 서두에 들어 있다. 이 대목에는 ‘제3이사야’의 특징이 엿보인다(5,6-8; 참조. 이사 60,11-14). 이 대목을 자세히 읽어보면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 우뚝 솟은 시온 산(2절; 참조. 시편 48). 이사야 예언자는 장차 어느 날엔가 메시아께서 오시는 날 시온 산은 다른 모든 산 위에 우뚝 솟아 모든 백성이 모여들어 하느님을 만나 뵙는 지점이 되리라고 말한다.

- 모든 백성 소집된다(3절). 성전이 세워져 있는 시온 산은 이제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산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모여드는 산이 될 것이다.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모여와 성전의 전례에 참여하고 주님의 길을 배우게 될 것이다.

- 메시아 시대의 평화(4절). 주님의 학교에서 사람들은 적개심과 무기를 버리도록 교육받을 것이다. 예언자들이 선언한대로 주님을 알게 된 결과 세계적인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참조. 이사 11,1-9). 모든 백성을 심판하고 재판하는 주님께서는 온갖 억압을 풀어주고 평화를 안겨주실 것이다.

- 끝으로 지혜를 맛보라고 초대한다. 주님의 빛을 받으며 걸어가라고 초대한다.


시편 121 해설

주님의 집으로 가리이다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들의 시편은 이사야 예언자 말씀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예루살렘은 천상 조국을 상징하는 도시다. 이사야가 선포하는 미래 현실은 지금 교회 안에서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다. 교회는 살아 숨 쉬는 돌들(사람들)로 건축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교회 안에 성전 안에서처럼 당신 거처를 정하고 계신다.


제2독서(로마 13,11-14) 해설

바오로 사도는 오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러 가기 위해 빛 안에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이 대목은 바오로가 사랑을 율법의 완성으로서 제시하는 부분(13,8-10)에 속한다. 이 같은 새로운 ‘사랑의 윤리’는 구원론적인 의미와 종말론적인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마지막 때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형제자매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는 결과와 증거가 된다.

-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신자들은 일어날 시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밤은 지나가고, 낮이 다가왔다.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12-13절). 바오로 사도는 어둠과 밤을 상징하기 위하여 잠에 관하여 말한다. 성경에서 ‘어둠’은 악의 세력과 그 추종자들을 가리킨다(참조. 1테살 5,5). 이러한 악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빛의 갑옷이 필요하다(1테살 5,8). 빛의 종말론적 승리는 이미 확보되어 있다. 밤은 낮한테 자리를 넘겨주기 마련이다. ‘밤’이 사람의 시간인 반면, ‘낮’은 하느님의 시간이다. 낮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었고, 빛으로 넘치고 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라고 사도는 결론짓는다.

-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14절). 빛의 갑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는 것과 같다. 밤에서 낮으로 건너간다 함은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건너감을 상징한다. 죄악에서 은총으로 건너감을 상징한다. 늘 감사하면서 살아감을 상징한다. 우리의 지상생활 기간인 종말론적 시간은 내적 쇄신과 정의의 실천을 재촉하고 있다(참조. 로마 6,4.13).

우리 지상 생애의 순간순간이 그리스도로 무장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때이다. 어둠을 버리고 빛을 택하는 우리의 선택 하나 하나가 인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고 계신다는 표시가 된다.


복음(마태 24,37-44) 해설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오고 계신다

그리스도와 결정적으로 만나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마태오는 자기 복음서를 종말론적으로 종합하여 결론짓는 가운데 세상 끝날에 앞서 일어날 징표들에 관한 몇 가지 비유를 모아놓고 있다. 홍수를 비유로 들고, 강도를 비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 비유는 빼놓고 있다(마태 24,32-35).

- 파루시아(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뜻하지 않은 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세속 일에 골몰하고 있을 때 홍수가 밀어닥쳤다. 세상 끝 날에도 그와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갑작스레 심판하시러 당도하실 것이다. 마지막 날의 갑작스럽고 당혹스런 성격을 강조하기 위하여 노아의 세대가 돌이킬 수 없이 당한 홍수를 비유로 들고 있다.

- 사람들이 겪게 될 운명(40-41절). 죄악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버려둘 것이다. ‘데려 갈 사람’과 ‘버려둘 사람’을 갈라놓는다. 각자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이 구별의 기준이 되고, 겉모양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 밑바닥을 헤아려 당신을 받아들인 사람과 귀를 막고 배척한 사람을 구별해내실 것이다.

-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42-44절).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태도를 말한다. 깨어 기도하라(루카 21,36). 우리는 주님께서 어느 시간에 오실지 실상 모르고 있다. 매일 매순간 정신 차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그 매순간이 마지막 순간과 매한가지라는 사실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전제한다. 시간적으로는 간격이 있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매한가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현재 매순간의 나의 처신과 선택은 마지막 때를 당하여 행하는 처신과 선택이나 매한가지라는 뜻이다. 이는 곧 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우러나오는 결정적인 ‘새로움’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처럼 깨어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새로운 마음으로 근검(1테살 5,6-8)과 절제(1베드 5,8)를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오셨고 또 오고 계시는 주님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는 표시가 된다.


묵상


대림시기의 그리스도교적 의미


전례력은 대림시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대림시기로 달력이 시작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그 시작은 하나의 새 출발과 다시 태어남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자면, 믿음에 따라 살겠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동체적이고 교회적인 약속과 결심을 가리킨다. 대림시기는 무엇보다 먼저 ‘성사’(聖事)다. 하느님께서 은혜로이 베풀어주시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우리 모두에게 위안을 준다.

우리 묵상의 출발점으로 7세기 인도 성전 중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로 하자. 이 구절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각 사람이 죽기 위해 태어나는 세상에서 과연 무슨 행복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겠는가?”(요가 바시스타; 참조. 잠언 1,1이하).

우리의 믿음만이 세상 시작 때부터 내려오는 그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이 주는 답변은 애매하지 않고 분명하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죽으라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생명을 누리라고 창조하셨다. 우리 사람들이 그 같은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빗나가기만 할 때에, 하느님께서는 몸소 당신의 계약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역사 안으로 들어오셨다. ‘마지막 때’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그리고 우리의 역사 사건들 안에 와 있고 이루어지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고, 새로운 모양으로 인생살이를 밝혀주는 빛을 받아들이고, 마음 속 깊은 데서 주님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받아야겠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상태가 아니다. 하느님이 결정적으로 개입하실 때에 피신하기 위하여 사악한 세상을 단죄하고 배척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태도가 결코 아니다. ‘마지막 때’처럼 ‘하느님의 때’는 언제나 갑작스런 기습이 되고, 심판이 되고, 일상생활에 대한 가치평가가 된다. 모든 시대와 세대와 사회는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데만 온 정신을 팔도록 유혹을 받는다. 모든 요구와 관심과 목표를 천박한 지상적인 수준 안에다 가두어놓고서, 회개하지 않고 힘겨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서 획득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도록 유혹을 받고 있다.


대림시기: 깨어 노력해야 할 시기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깨어 노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적인 촉각을 곤두세우고 믿음의 비판능력을 새롭게 하여 우리의 개인생활 안에서 그리고 복잡하기만 한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때, 시대의 징표들을 가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깨어 기도하는 시기이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가려낼 수가 있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과 어긋나기도 하고 그 길을 뛰어넘기도 한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관습과 인습을 극복하면서 성실한 사람들의 말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다. 사람들의 말 속에 담겨진 부족함과 유혹과 거짓을 뛰어넘을 수 있다.

“잠에서 깰 시간이다.” 라고 바오로는 우리를 일깨운다. 안일에 파묻혀 게으름을 피우거나 체념하고 마는 잠에서 깰 시간이다. 손쉬운 낙관주의, 다수의 의견이나 세속의 도덕에 무조건 동조하는 잠에서 깰 시간이다.

사람의 아들은 마치 도둑처럼 들이닥칠 것이다(마태 24,23).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평온과 안정을 깨뜨리고, 우리의 소유와 안식처를 빼앗으실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발가벗겨져 우리의 근본적인 가난이 드러날 것이고, 참된 희망만이 남을 것이다. 인자는 현재의 우상들을 쳐부수고, 장래의 환상을 흩으며, 우리에게 하느님의 미래를 열어 보이실 것이다.

하느님의 미래는 우리의 역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느님의 미래가 충만하게 성취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이지만 말이다. 하느님의 미래는 이미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2-13). 끊임없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대림시기는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성탄은 늘 ‘새로운 창조’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자기의 인간성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다시 새로워진다.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깨끗해지고 넓어진다. 그의 행위는 그리스도답게 선택하는 행위가 된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 예언자의 꿈이 헛되고 이상향적인 환상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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