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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마음을 알아채기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11-28 조회수439 추천수6 반대(0) 신고
 
 

 

주님의 마음을 알아채기 - 윤경재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24,37-44)

  

 

현대의 철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았습니다. 인간은 생각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며 원리를 추론하고, 학습을 통해 기억하며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며 창조를 이룹니다. 그런 생각이 나오는 뿌리를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과 달리 인간의 마음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그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정신과는 다르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신은 인간 DNA나 신경망에 의해 구조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이성이니 오성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혼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미 마음을 지닌 사람과 동떨어져 자란 아이는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기가 단순히 어른과 접촉한다고 해서 그 아기에게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냥 먹을거리를 주는 것, 안아주는 것, 야단을 치는 것만으로 아기에게 마음이 싹트지 않습니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이코 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 같은 사람은 정신은 멀쩡하지만, 마음이 올바르게 자리 잡지 못 한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더 악랄한 범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릅니다. 멀쩡한 정신으로 더 교묘한 범죄를 일으킵니다.  

인간이 마음을 지닌다는 것은 내 머리 깊숙이, 내 가슴 깊숙이 어떤 주관적이며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기관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신입니다.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이와 다릅니다. 마음은 우리가 자기 살갗 바깥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자기 바깥에 나 말고 다른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그것도 신뢰와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이 싹 터야 마음이 자라납니다. 사이코 패스들이 보이는 두드러진 점 중의 하나가 타인과 맺는 공감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의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거나 보지 못하고 자신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여깁니다. 

인간이 마음을 기르는 첫 번째 과정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곁에 두고 보살핍니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든가 배변을 하여 불편을 느끼는 것을 알아채고 해결해 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곧 편안함을 느끼고 작은 기쁨을 맛봅니다. 불쾌와 상쾌함의 차이를 구별하기 시작합니다. 점차 커가면서 아이는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엄마의 젖을 찾는다거나 자신의 손을 빤다든지 하여 나와 남을 구분합니다. 곧 몸을 뒤집고 구르며 걷기 시작합니다. 이때 어머니는 아이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 놓아기릅니다. 인큐베이터와 같은 우리에 가두어 두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뱃속에서 나왔지만, 아이를 자기 자신이라 여기지 않고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아이도 함께 잘 살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자신과 함께 세계의 공동 거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아이와 애정 어린 접촉을 통해 학습을 실행합니다. 위험한 물건과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깨닫게 가르치고 옹알이를 통해 맘마와 엄마와 아빠 같은 간단한 말을 익히게 합니다. 사물의 이름을 부르게 가르칩니다. 언어는 바깥 세계를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어머니는 일관성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사과는 늘 사과라고 부르고 바나나는 언제나 바나나라고 부릅니다. 어제는 사과였다가 오늘은 바나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참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거짓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올바른 가치관으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이끕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사과’라는 말을 가르치면서 아주 많은 것을 믿고 있고, 많은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도 저기 바깥에 놓인 사과를 자신과 함께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어머니에게 사과는 자기 생각 속에 있는, 자기 머릿속에 있는 관념이 아닙니다. 사과는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이며, 아이도 이 사물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 세계를 다른 사람과 함께 살고, 함께 알아가야 하는 공통의 세계라고 여기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셈입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통해 하나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배웁니다. 다른 자아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환영하고, 세계의 공동 거주자로서 배려하는 어머니의 마음가짐을 배웁니다. 인간의 마음은 태어나자마자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을 가진 다른 사람이 나를 바깥 세계에 개방하고, 나를 가치 공동체의 일원으로 수용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가지기까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의 사랑스러운 시선과 배려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인간 너머에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을 기리켜 보이셨습니다.  인간이 인간의 마음을 갖추는 것도 어떤 올바른 과정을 거쳐 성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고 깨닫는 일은 분명히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비로소 가능해졌습니다. 인간의 세계에만 눈을 돌리고 하느님의 나라에는 눈을 돌릴 줄 몰랐던 눈먼 인간들에게 신천지를 가리켜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마음을 갖추어야 진정한 참 인간이 되듯,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들어야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릇된 인간의 마음을 담은 사람을 사이코 패스라고 부른다면 하느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 한 사람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노아의 때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방탕 하느냐 홍수에 휩쓸려 멸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눈먼 자’ 또는 ‘잠든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가르쳐 주시러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맞이하는 대림 1주간을 맞아 진정한 깨어 있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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